▲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답답하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갈수록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는 암울한 분석까지 나온다. 이달 9일 국회 탄핵소추 이후 두 번째 주말집회에도 여전히 수십만명에 이르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였다. “머지않은 날 뭔가 바뀌지 않겠느냐”라던 희망과는 달리 목적지가 어딘지 모를 정도다. 특히 노동자들의 오래된 작은 소원은 도리어 뒷걸음만 치고 있다.

여러 잘못 중 박근혜 정권이 해 온 노동정책도 국회 탄핵소추 의결로 심판받았다고 봤다. “이제는 한숨 좀 돌리겠다”고들 했다. 그동안 확인된 여러 정황만으로도, 대기업들이 준 뇌물 대가에는 정부가 기업 편에 서 달라는 주문도 포함돼 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정부도 더 이상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으리라는 소박한 바람은 자연스럽다.

더구나 절대 다수인 야 3당에서도 수차례 강제적인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같은 ‘박근혜표 노동정책 폐기’를 결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 구성과 정책 그 어느 것 하나 변한 게 없다.

지난 20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큰 사건이 있었다. 경북지노위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신청한 관할 개별사업장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관련 심의가 예정돼 있었다. 무려 53건이었다. 이대로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한국노총은 경북지노위 항의방문을 결행했다. “노사 자율로 체결된 단체협약을 지노위가 지역 노동청의 일방적인 의견만을 좇아 시정명령을 내리지 말라”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었다. 다행히 지노위에서 “심의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아 냈다.

같은날 저녁 이보다 충격적이 뉴스가 나왔다. 이랜드그룹에서 청소년들의 알바 임금을 갈취했다는 소식이다. “무려 4만4천명의 아르바이트 노동자 임금 84억원을 체불했다”는 노동부 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됐다. 깜짝 놀랄 일이다. 그 수법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15분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맺거나 10~20분 일찍 출근하기 같은 비열한 꼼수를 동원해서 청소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한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속담은 이때 쓰는 말일 게다.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불매운동에 나서겠다고 한다. “더 이상 겉만 번드르르한 상호에 속지 않겠다”고 한다.

지난 16일 국제노총 아태지역기구(ITUC-AP)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서울고법의 3년형 선고는 노동조합의 집회·결사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의했다. 국제노총뿐만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국제공공노련(PSI)은 한목소리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노동기본권 탄압과 성과연봉제 확대 등 정부의 노동공공성 파괴 시도를 지탄했다.

체불임금 역대 최고치 경신 예상, 실업률 확대 우려 등 이것 말고도 노동문제와 관련한 암울한 뉴스는 늘어만 가고 있다. 노동현장에서는 이대로라면 정말이지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공공연한 엄포처럼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공공기관에서 성과연봉제가 강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저성과자 퇴출제는 거둬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가득하다.

“30년 만의 혁명”이자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명예혁명의 길에 들어섰다”고들 난리다. 그런데 왜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삶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 ‘승리’라면 당연히 ‘결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당장 “노동기본권 강화 헌장” 같은 거창한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나쁜 머리 탓에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과연 혁명의 결과는 어디로 갔을까. 짧은 생각은 “혹시 혁명의 과실을 누군가 가로챘을 수도 있다”는 데 이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아닐까. 결실을 만들어야 할 자가 임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심이다. 그래서 찾은 답은 현재 상황에 대한 제1 책임자는 바로 국회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국회는 하루라도 빨리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빵’이 컸던 것일까. 보고 있노라면 이들에게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그저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하다. 야당이 더 문제다. 탄핵소추 의결이 어디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었던가. 말로만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힘이라고 떠들 게 아니다. 싸우더라도 시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나.

언제까지 “형사소송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둥, “탄핵소추 의결정족수가 어떻다”는 둥, 이 상황을 누릴 생각만 할 셈인가. 그렇게도 답답하면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면 그만인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굳이 시비를 붙이는 이유는 뭔가.

노동자들은 하루가 급하다. “노동부는 단협 시정명령 조치를 그만둬라.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서 모든 체불임금을 해소하라.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엄단하라.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 확대 정책을 폐기하라”는 국회 결의를 소망한다. 이 시기 의회가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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