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케이블을 설치하는 설치·수리기사는 간접고용 노동자다.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기본급은 낮고 건별로 실적급을 받아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식이다. 그래도 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는 노조라도 만들어 협상을 한다.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도급기사들은 그마저도 못한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다. 일종의 특수고용직이다. SK브로드밴드 같은 원청이나 하청은 도급기사를 선호한다. 노조를 만들 일도 없으니 집단적으로 대드는 일도 없다. 최근 추혜선 정의당 의원에 의해 도급기사 사용은 정보통신공사업법 위반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법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수리기사 고용안정, 지금은 꼼수 아닌 결단할 때
추혜선 정의당 의원
 

▲ 추혜선 정의당 의원

유료방송·통신사 또는 그 서비스센터가 인력운영 과정에서 정보통신공사업법을 위반한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다. 사업자들은 그 인력에 대해 개인사업자·도급기사·근로자영자·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등 이름과 형식을 바꿔 가며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왔다.

2014년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통해 이들이 노동자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노동부를 우롱하듯이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인 듯 포장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강구했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강요하고 업무지시와 근태관리를 더욱 음지화하는 방식으로.

이번에 기자회견을 통해 정보통신공사업법 위반임을 밝힌 이유는 사업자들과 미래창조과학부·노동부에 더 이상 이런 꼼수를 쓸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 주기 위함이다. 설치·수리기사가 근로자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고, 개인사업자라 해도 정보통신공사업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미래부는 노동부 소관이라는 이유로, 사업자들과 노동부는 근로관계가 아니라 도급관계라는 이유로 노동권 사각지대를 만들고, 도급기사 사용을 묵인 내지 장려해 왔다.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당연히 불안정한 고객서비스로 이어졌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꼼수’가 아니라 ‘결단’이다. 이참에 설치·수리기사들의 안정적인 고용구조와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고객서비스를 만들겠다는 통신·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겠다는 미래부와 노동부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하청·원청이 순서대로 직접고용 필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통신대기업 하청업체들이 통신 설비를 설치·수리하는 기사와 개별 도급계약을 맺는 것은 명백한 불법고용이다. 더구나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재하도급을 하지 않기로 한 노사합의를 파기하기도 했다. 법과 단체협약을 모두 위반한 불법고용이 통신대기업에 버젓이 성행하면서 확대돼 온 것이다. 통신대기업의 설치·수리 업무는 불법파견 또는 위장도급 혐의가 짙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아래 외주하청화돼 있다. 이런 노동권을 침해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부터 원청업체인 통신대기업이 직접고용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외주하청업체가 재하도급하는 방식으로 개인도급까지 늘려오면서 불법의 온상이 됐다.

특히 개인 도급기사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작업 중 추락사하거나 중대재해를 당해도 산재처리조차 되지 않는다. 통신대기업은 즉각 불법을 시정하고 노사합의를 준수해야 한다. 더 이상 꼼수 부리지 말고 우선 개인 도급기사 전원을 외주하청업체의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음에는 상시지속적으로 일하고 있는 외주하청업체 기술서비스 기사들을 원청이 전원 직접고용 정규직화해 하도급 구조를 근절해야 한다.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문제가 중첩된 최악의 불법 일자리인 개인 도급기사는 하루빨리 철폐해야 한다.


늦은 만큼 도급기사 직접고용해야
이해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지부장
 

▲ 이해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지부장

지난 9월 SK브로드밴드 의정부홈고객센터에서 도급기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 오는 날 무리해 전신주에 올랐다 감전됐다. 같은 회사를 위해 일하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사망해 안타까움이 더 컸다. 하는 일도 같은데 도급기사라는 이유로 산재 신청도 못했다. 노조 조합원이었다면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전신주에 오를 수 없다고 작업을 중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노조에 가입할 수도 없고 안타깝게도 우리 역시 지켜 주지 못했다. 최근 도급기사가 정보통신공사업법상 불법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령해석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나왔다. 노조에도 가입할 수 없는 변종 근로형태인 도급기사가 늘어나 노사갈등이 커졌는데 불법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안타깝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미래부는 무엇을 했나 싶다. 원청인 SK브로드밴드와 협력업체는 책임을 미루고 있을 것이다. 도급기사와 고용관계가 없으니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도급기사를 직접고용해야 한다.

지자체는 도급기사를 규제하는 게 시도지사 관할인만큼 즉각 시정에 나서야 한다.


가짜 사장님들, 진짜 노조 합시다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
 

▲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

웬일? 깜짝 놀랐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달라졌다. 불법을 불법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전신주와 건물 옥상 등에서 케이블·IPTV·인터넷을 설치하고 AS하는 작업은 정보통신공사업법 상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한 사업자만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법에 따르면 정보통신공사업자는 자본금 1억5천만원에 사무실을 갖춰야 하고, 기술자 셋이 있어야 한다. 미래부는 지자체를 통해 내년 상반기 중 실태조사를 벌이고 위반 사업자들에 대해 시정명령 등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노조가 올해 초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LG유플러스 개통기사 82%, SK브로드밴드 개통기사 52%가 개인도급이었다. 미래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LG와 SK 그리고 각 지역센터들은 사용자로서 책임은 내팽개치고 불법을 저질러온 셈이다.

원청·하청·미래부·지자체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제 현장에서는 개인도급이 사라질 것이다. 이미 계약해지를 추진 중인 센터도 있다. 희망연대노조 입장은 분명하다. “개인 도급기사들도 우리 동료다, 해고 말고 정규직화하라”는 것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들처럼 일회용품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다. 일터를 잃을 사장님들에게 말씀드린다.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는 없다. 다음 달 1일자로 정규직이 된다. 노조 문을 두드리시라(cafe.daum.net/hopeunion). 가짜 사장 말고 진짜 노조 해 보자.


고용안정으로 유료방송 공적책무 다하라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소위 통신케이블 노동자라 불리는 IPTV·인터넷 설치기사도 유료방송 노동자다. 설치기사들은 고객과 직접 만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료방송의 핵심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방송의 공적책무에는 구성원 고용에 대한 책임도 포함된다. 지금의 상황은 도급이나 하청의 형태로 간접고용이 만연해 있다. 불안정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방송이 가진 공적책무에 반하는 행위다. 공적책무 영역에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올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마련하면서 사업자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유료방송이 실제 방송시장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그에 걸맞은 공적책무를 주겠다는 거다. 나아가 정부는 안정된 일자리 마련을 위해 건전한 고용구조를 방송허가 심사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개인 도급자로 내몰고 있다. 대인서비스를 담당하는 설치기사들의 고용 불안은 서비스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료방송업체들이 방송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시청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설치기사들에 대한 고용을 안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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