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소문은 요란했지만 … 의원들 결정적 한 방 없이 호통 공세." 한국일보 12월7일자 5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그나마 한국일보는 같은 면 아래쪽에 3단 박스기사로 ‘총수들 진땀 나게 … 몇몇 의원은 송곳 추궁’이란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송곳 질문을 한 의원들은 대부분 새누리당쪽이다.

하태경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전경련 탈퇴 답변을 얻었고, 같은 당 이종구 의원은 미래전략실 해체를 약속받았다. 장제원 의원은 한화가 말 두 필을 정유라에게 지원한 의혹을 제기해 김승연 회장을 진땀 나게 했다. 장 의원은 청와대 의무실장을 물고 늘어져 대통령에게 백옥주사와 태반주사를 처방한 사실을 밝혀냈다.

한겨레는 7일자 8면에 아예 '야당 같은 여당 청문위원 장제원·황영철'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청문회 정국에서 야당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준비는 하나도 안 한 채 빈 밥상만 차려 놓고 국민 보고 먹으라는 꼴이다. 정의당은 국정조사특위에 청문위원으로 아무도 못 들어간 줄 알았다.

이래 놓고도 야 3당 대표들은 연일 희희낙락이다.(문화일보 12월6일자 4면, 한국일보 12월7일자 7면 사진) 촛불정국에서 뒷북만 치던 분들이 해도 너무한다. 만면에 웃음을 띤 야 3당 지도부의 환한 사진을 매일 신문방송을 통해 바라봐야 하는 국민은 과연 마음이 편할까.

야당 대선후보들은 선거운동에 열심이다. 지지율 3%짜리 한 야당 대선후보는 토론회에 참석해 “청와대를 경복궁 복원과 연계해 박물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청와대 해체를 주장했다. 그 후보 말 앞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만 붙이면 완벽한 대선 유세장이 된다. 김칫국을 사발로 드신 듯하다.

탄핵 가결을 위해 여야가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탄핵안에서 삭제하는 논의에 들어갔다는 뉴스도 들린다. 문화일보는 6일자 4면에 '여야 7시간 행적 제외 등 탄핵안 수정 착수'란 제목의 기사에서 새누리당 비박계가 표결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펴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했다. 물론 촛불민심이 두려워 다음날 두 야당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후퇴했지만, 정치권에서 이런 말이 오가는 것 자체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자유당보다 더 썩었던 한국민주당으로부터 면면히 이어 온 한국 제도권 야당들 눈에는 ‘세월호 7시간’쯤은 집권을 위한 불쏘시개로 보이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촛불이 무서워 비박도, 친박도 잠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야당이 긴장을 늦추는 사이 보수진영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이 와중에도 자유경제원은 7일 촛불 막말을 내뱉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에게 ‘2016 자유경제입법상’을 줬고, 경찰청장은 쌍용자동차 사태 때 권영국 변호사를 불법체포한 경감을 2010년 경정에 이어 최근에는 총경으로 초고속 승진시켰다. 국민이 뭐라 하든 제 편만은 악착같이 챙기는 보수의 집요함을 같은 보수인 야당들이 좀 배웠으면 한다.

국민은 이미 경험으로 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정치적으로는 왼쪽으로 갔는지 몰라도,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가혹한 정부였다. 이런 식으로 현재 야당이 오롯이 박근혜 대통령의 자살골 덕분에 내년 대선에서 집권한다면, 그나마 각고의 노력으로 집권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보다 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노력 없이 이룬 성공만큼 위험한 게 없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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