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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 기업 채용갑질 개선해야오효진 변호사(경기도의회)
▲ 오효진변호사

얼마 전 프랑스 기업들이 낸 채용공고와 작가가 작성해 제출한 입사지원서 그리고 회사 답장을 엮은 책을 읽었다. 입사지원서 100개쯤 쓰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닌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런 내용이 책으로 출판할 만한가 싶은데, 문학상까지 수상한 어엿한 작품이다.

사실 작가는 뽑아 주시면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는 식의 전통적인 입사지원서를 쓴 것이 아니다. 채용공고 특성에 맞게 창의적인 입사거부서를 작성해 그 회사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고 거짓말과 굴욕적인 태도를 강요당하는 채용시스템을 비꼬았다. 예를 들면 토·일 주야간 교대근무 가능한 약품제조 품질 관리자를 모집하는 제약회사에는 과로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며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제약회사 안에서 번아웃되기 싫으니 귀사의 일자리를 거절하겠다는 식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입사거부서에 대한 회사의 답변이다. 작가는 7년간 1천여통이 넘는 입사거부서를 써서 겨우 50여통의 답장을 받았다. 대부분은 귀하의 지원서를 신중히 검토했으나,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식의 기계적인 답변이었다. 채용공고에서 최고의 기업이 훌륭한 인재를 모신다며 으스대던 회사가 결국은 입사지원서조차 제대로 읽지 않은 형편없는 기업이라는 반전이다. 구직 과정에서 경험한 기업의 거만한 태도와 비인격적 질문에 화가 나서 이런 유쾌한 반항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인데, 한때 구직활동을 해 봤고 작가의 분노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반항과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최악의 취업난 속에 면접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기업들의 채용갑질에 휘둘리는 청년들의 속앓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근로계약 체결의 주요 내용인 연봉과 직무내용을 입사 전에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전형별 합격 여부나 세부 채용일정도 제대로 통보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남자친구 있어요?” “부모님은 왜 이혼하셨어요?” 같은 사생활 침해와 “아는 게 없네요” 혹은 “사진보다 늙어 보이네요” 같은 모욕은 이른바 ‘압박면접’으로 포장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면접시험에서 “좌파냐 우파냐”거나 “종북좌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사상검증용 질문까지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수백명이 몰린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 최종 면접을 거치고도 아무도 채용하지 않은 희망고문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인턴을 뽑아 놓고 영업 할당량을 부여해 사상 최고 실적을 낸 몰염치 기업도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기에 채용 과정에서 다소의 비인격적 대우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채용 과정은 근로계약 체결을 위한 기업과 구직자 당사자 간 교섭 과정이지 기업이 일자리로 시혜를 베푸는 자리가 아니다. 기업은 구직자에 대해 인격적 대우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 과도한 인신공격과 모욕 발언 그리고 채용공고 내용의 허위와 채용절차·대우수준 등의 일방적 변경에 대해서는 민·형사적 책임도 져야 한다. 다만 잠재적인 불이익을 피하려는 구직자들이 기업의 채용권한 남용을 문제 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채용 과정에서 구직자 인권보호를 위한 행정감독과 기업의 법률상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주 구인자가 구직자에게 사진 부착을 포함한 용모·키·체중 및 출신지역이나 혼인 여부, 재산규모와 부모의 학력과 직업 등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채용 과정의 변경 내용을 구직자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다. 기업측은 사진부착 금지로 신원확인이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으나, 현재도 이력서 사진만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아니니 적절한 사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내용을 법률로 규정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구직비용 절감과 구직자 인권보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개정안으로 생각된다. 다만 채용갑질에 대한 백수의 반항이 문학작품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보호책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채용갑질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인권 침해를 당한 구직자에 대한 구제절차 및 소송상 입증책임 전환 등 실효성 있는 조치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려는 청년들이 구직 과정에서 비인격적 대우를 감당하지 않도록 공정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촛불집회 자유발언대에 서서 발언하는 대학생들의 분노의 목소리에 경제적 불평등과 갑질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효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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