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회가 2일로 공언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수포로 돌아갔다. 시간 끌기에 나선 박 대통령 노림수가 통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담화에서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를 국회에서 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사임을 거론하자 정치권은 술렁거렸다. 새누리당이 가장 먼저 화답했다. 탄핵에 앞장섰던 새누리당 비박 계열 의원들이 흔들렸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4월 퇴진, 6월 대선’안을 꺼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은 내년 4월30일로 못 박고, 6월에 조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 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새누리당 비박계열 의원들이 탄핵전선에서 이탈하자 야권은 갈지자걸음이다. 당초 야권은 이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하려 했다. 하지만 야권은 대통령 임기단축 방안에 홀린 새누리당 비박계열을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다. 가속 페달을 밟았던 탄핵열차는 급제동 걸렸다. 탄핵정국 주도권도 새누리당에 넘어간 모양새다. 야권은 이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을 재추진하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실 문제는 단순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사익을 취하지 않았고, 주변을 관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범죄혐의를 발뺌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과 공동정범이자 피의자 신분이다. 범죄혐의가 확인돼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대상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검찰 대면조사를 거부한 채 청와대에서 농성을 벌였다. 급기야는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국민들에게 직접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이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진퇴문제를 포함한 임기단축 문제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느 나라 국회도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는 분리됐다. 국회의 할 일은 중대한 범죄혐의가 드러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다. 범죄자인 박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위해 원 포인트 개헌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사기관의 조사마저 받지 않은 피의자에게 면죄부부터 쥐어주는 꼴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에 대한 국회의 화답은 오직 ‘탄핵’ 뿐이다.

이처럼 답이 정해진 문제임에도 국회는 망설인다. 박 대통령 퇴진과 조기 대선 그리고 개헌이라는 셈법에만 매달리고 있는 탓이다. 이러니 국민들은 답답할 따름이다. 하지만 광장의 열기는 국회의 정치셈법을 넘어섰다. 주저하는 국회와 달리 광장은 흔들림이 없다. 거짓말로 점철된 박 대통령의 3차 담화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민주노총 조합원 22만명이 근무를 거부하거나, 단체협약에 보장된 노조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파업대회를 열었다. 요구조건은 바로 ‘공동정범 박근혜 퇴진, 재벌그룹 해체’다. 서울 광화문 집회에는 소상공인·장애인·대학생들도 함께 했다.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은 이제 일터로 옮겨 붙은 양상이다. 광장과 일터라는 공간적 단절을 넘어 집회시위의 순환이 이뤄진 셈이다. 시민과 노동자라는 주체의 순환도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상으로 보면 87년 6월10일 민주화항쟁 후 7·8·9월 노동자대투쟁의 파도가 몰아쳤다. 그만큼 광장과 일터에서 집회시위의 순환 효과는 파괴적이다. 거대한 변화가 뒤 따른다. 그래서 정부는 불법딱지를 붙여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가 일터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광장과 일터에서 집회시위의 순환을 막고자 함이다.

이처럼 언론이 부각시킨 촛불시위 참석자 수보다 공간과 주체의 순환이 더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한들 정경유착과 부패동맹 그리고 특권정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회시위의 공간·주체 순환은 더 확산돼야 한다. 이미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는 노동자·상공인·농민·시민들이 광장과 일터에서 자발적인 불복종과 항의표시를 하고 있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시작됐다.

국회는 이러한 변화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국회는 주어진 본분인 대통령 탄핵마저 저울질하는 구태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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