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지난주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상록수’를 부르던 시간이 떠오른다. 끝내 이기리라는 신파적인 노랫말에 울컥했다. 눈이 녹아 물이 흐르는 아스팔트에 우비를 깔고 앉았던, 뼈가 시리던 그 시간이 죽도록 괴롭지 않았던 것은 각자의 마음에 슬픈 온기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라는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상실감이 우리를 꺼지지 않는 촛불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잊고 있었는데 박근혜씨는 내가 투표권을 행사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대통령이다. 내가 스물두 살이었던 그해 겨울에 대선이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상영된 <레미제라블>에서는 민중의 노래가 울렸고, 이듬해 초 취임식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4년, 대통령의 존재를 굳이 상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투표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유를 넘어서는 이유 때문이다.

우주의 기운이니, 통일은 대박이니 같은 주술적인 언어에 당황했지만 독특한 화법이려니 했다. 청년들이 중동에 가야 한다는 말을 접하면서는 젊은 사람들을 향한 세간의 수없는 공격과 꼰대질, 그러니까 "농촌 가라, 눈높이 낮춰라"의 다른 버전이려니 했다. 창조경제·문화융성·청년희망재단 등 알맹이 없는 말의 향연에 짜증은 났지만 보수진영의 통상적인 정치행위려니 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분노와 참혹함을 느끼면서도, 적어도 구조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국가의 붕괴에 직면하면 스스로가 무너질 것 같았다. 대통령이 좀 이상해도 국가 시스템은 작동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지난 4년, 대통령의 존재를 굳이 상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은 성큼성큼 다가왔고, 설명되지 않던 과거의 순간들은 새로운 사실로 정립됐다.

이 사실들에 기초해 대국민 담화를 보다 보면 박근혜씨의 신비로운 세계관을 확인하게 된다. 국가 자체를 자기 존재에 귀속시키는 사고체계를 수십 년 동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의구심 정도였는데, 지금은 확신이다. 이 사람한테 헌법·민주주의·공적 책임을 묻는 건 허망하다고 느껴지고 강제적 조치가 즉각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사와 국정조사는 병행돼야 하고, 국가의 사유화를 용인하고 협조하며 이득을 취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 때문이다. 2016년 지금, 근현대사 책에서나 보던 박정희와 싸우는 기분이다. 이 싸움의 끝이 더 큰 상실감으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여의도·종로·강남 일대의 눈치 게임에 때로는 짜증이 나지만, 서늘한 인내심을 벼려 본다. 시간의 문제일 뿐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많이 왔다. 서로 온기를 주고받고 한목소리로 나아가면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조금씩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손에 쥔 촛불의 힘으로 현 정권을 퇴진시킨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특별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상실감을 딛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치유의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

날이 몹시 춥다. 건강을 돌보고, 마음속에 촛불을 켜고, 신발 끈을 여미자.

그리고 36.5도의 따뜻함으로 다시 한 번 광장에 함께 서자.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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