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즉각 퇴진 압박을 받아 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꼼수를 부렸다.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을 공식화했고, 비박계 의원들의 입장변화로 탄핵을 함께 추진했던 정치권이 균열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각계각층의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계,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양대 노총은 지난달 전국노동자대회를 촛불집회와 연계했고, 민주노총은 30일 총파업을 했다.

190만명까지 늘어난 촛불 대열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 시민이 아닌 노동자의 모습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모습으로 ‘불복종’을 주도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1987년 6월 항쟁이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어떻게 해야 촛불이 꺼지지 않고 더 큰 희망을 국민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강한 파업, 손쉬운 공동행동 모두 필요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노동계는 박근혜 정권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고, 적극적으로 집회·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1차 총파업을 했다.

노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항의 표시는 파업이다. 하지만 지금 형태의 파업은 현장의 기계를 멈추고 사회의 일부분을 멈추는 게 아니다.

파업은 실제로 현장을 멈출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현장과 기계를 멈춰 정부에 "대통령이 지금 당장 하야하지 않으면 경제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줄 정도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87년 노동자 항쟁과 96~97년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당시에는 실제로 기계를 세웠기 때문에 정권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싸움의 긴장도를 높여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함께 손을 잡고 보다 직접적인 항의·실천행동을 구사해야 한다. 불복종 운동의 일환인 일손 놓기(파업)를 확대·강화할 필요가 있다.

파업에 부담을 느끼는 노조도 있다. 그런 노조들은 공장·사업장 안에서 조합원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한다. 예컨대 5분이나 10분 정도라도 기계에서 손을 놓고 릴레이 구호를 외치는 방법이 있다. 조합원들이 손쉽게 참여하면서도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공동행동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촛불집회에도 노동자들이 혼자 나오지 말고 반드시 가족과 함께 나가기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박근혜 이후 사회, 노조가 대안 줘야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

▲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과 재벌기업의 정경유착이 확인됐다. 기업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면서 청년고용과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에 쓰일 돈이 엉뚱하게 사용됐다. 노동자들이 낸 세금을 자기 돈인 거처럼 주물럭거렸다.

우리의 아들딸을 이런 사회에 살게 할 수 없다는 분노가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양대 노총과 노조가 사회구조를 바꾸는 데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다. 지금 시기에 노조가 나 몰라라 한다면 국민이 노조에 등을 돌릴 것이다.

대통령 퇴진투쟁 초기에는 민주노총과 노동계의 색깔이 비교적 강했지만 지금은 시민의 눈높이로 바뀌고 있다. 긍정적이다.

더 중요한 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이후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다. 노조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지 그리고 내년 19대 대선에서 어떤 개혁을 관철시킬 것인지 노조가 주도해서 고민해야 한다.

노조 위원장 혼자 연단에서 연설하는 방식이 아닌, 더 많은 조합원이 광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 바꿀 기회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이런 국면에서 노동운동이 헤게모니를 쥐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쉽지 않다.

민주노총이 인적·물적 자원을 많이 투입해 촛불행사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정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무대 연단에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그만 올라와야 한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현재 국면을 이용해 노동계가 자기 이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조합원들의 인식이 더 중요하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노조활동을 하다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정리해고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의 공간을 확대하기에 유리한 정권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총력을 다해 민주정부를 탄생시켜야 한다. 투쟁의 성과를 챙기지 못했던 87년 항쟁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다행히 2008년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와는 달리 깃발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자연스럽게 응집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노동문제가 이 국면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한 생활 속 저항 늘렸으면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5주 연속 주말마다 100만명의 촛불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 국면에서 노동계는 양대 노총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매주 촛불집회에 결합하고 있다. 징계와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총파업 투쟁을 벌이는 것은 존경스럽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다. 양대 노총 조합원만 해도 170여만명이다. 이들이 가족이나 친구 손을 잡고 함께 나와도 510만명은 될 것이다. 양대 노총 조합원들이 다 나오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총파업은 너무 고생스러우니 다른 방면으로 전국 단위노조들이 각자 시국선언을 하고, 노조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과 연계해 동네마다 크고 작은 촛불집회에 참여했으면 한다.

조합원들은 집집마다 ‘박근혜 퇴진’ 현수막을 붙이고 경적 저항과 소등 같은 생활 속 항의운동을 하면 파장이 클 것이다. 노동계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1 조합원 1 시민단체 가입'을 통해 연대의 질을 높였으면 좋겠다. 나아가 단위노조와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결연을 맺어 중장기적으로 연대가 지속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대 노총, 조직적 불복종 운동 전개해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매도·헌정파괴의 주범인 박 대통령이 촛불 민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에 숨어 대한민국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모든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 그리고 청년희망재단을 통해 재벌과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였다. 그 대가로 성과연봉제와 2대 지침을 재벌에 선물했다. 노동 5대 악법도 선물하려 했다. 대선공약인 고용률 70% 실패는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업들로부터 갈취한 재원으로 만든 민간재단에게 떠넘기려 했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200만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한목소리를 냈고, 그 속에 양대 노총 조합원들이 서 있다. 동지들 얼굴을 광장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그 어느 때보다 벅차고 감동적이었다.

다만 광장의 목소리에 양대 노총 노동자들이 좀 더 조직적이고 짜임새 있게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연맹이나 산별 조직별로 선거 등 개개의 내부일정이 산적해 있지만 조직노동자들이 좀 더 계획적으로 앞장서고, 미조직 노동자들도 함께 견인할 수 있는 활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힘이 모아진다면 정치파업 운운하면서 박근혜 퇴진을 말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불법파업으로 탄압하려는 시도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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