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14일 국제노동기구(ILO)가 ‘세계의 비정규직 고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보고서 원문은 http://www.ilo.org/global/about-the-ilo/newsroom/news에서 찾을 수 있다).

ILO는 지난해 2월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노사정 전문가회의를 개최했고, 여기서 채택된 결론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이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양질의 노동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사정이 협력해 이행해야 할 조치들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적 조치로는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평등하고 차별 없는 대우,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장,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촉진, 근로감독 개선 및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 고용형태 지양 등이 제기됐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이러한 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ILO가 조사·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단체교섭과 비정규 노동자 스스로의 단결 필요성을 강조한 부분이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내부에도 다양한 양상이 나타나는 만큼, 산업별·직종별로 구체화된 단체협약이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규율하는 데 적합한 방법이라고 ILO는 강조하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을 촉진하기 위해 ILO가 제기하는 우선적 과제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입법적 조치다.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국가라도 비정규직이 노조활동을 하는 데에 사실상 방해요소가 존재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 예가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의 경우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에서 재계약 여부는 사실상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기간제 노동자들이 계약해지 두려움 속에서 노조활동을 꺼리게 된다. ILO는 “비록 어떤 국가들에서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규제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단순히 재계약을 거절하는 방식만으로도 사용자는 그러한 규제를 손쉽게 우회할 수 있다”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노동기본권을 제약당하고 있는 또 다른 사례는 자영노동자(self-employed workers)다. ILO는 자영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고용관계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왔다. 그리고 독일·스페인·이탈리아·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많은 국가들이 자영노동자의 노조활동과 단체교섭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ILO가 제기하는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복수사용자 단체교섭(multi-employer bargaining) 촉진이다. 외주화와 간접고용화, 특수고용화를 통해 ‘진짜 사장’인 원청과 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법률적·계약적 관계가 은폐되고 모호해지는 현실에서, 원청을 포함해 해당 산업·직종의 관련 사용자 모두에게 책임을 지우는 복수사용자 단체협약이 보다 실효성 있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이번 ILO 보고서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노사정 논의 상황과의 현격한 차이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2000년 김대중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은 뒤 십수 년간 정부·노사정위원회 차원에서 비정규직 대책에 관한 무수한 논의가 있었지만,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는 의제에도 오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특수고용직 대책이라고 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박탈하는 정부 입법안과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만 제출된 바 있다.

지난 19대 국회때 노조법상 근로자·사용자 정의를 확장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도 다시 같은 취지의 노조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는데, 박근혜 탄핵 정국 속에서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다. 노사정, 그리고 국회에 촉구한다. ILO 보고서를 읽고 국제적 논의 흐름과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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