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

노동 3권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에게 어쩌면 ‘투명 망토’ 속에 꼭꼭 감추고 싶은 금기의 단어일지 모른다. 해리포터에게는 마법학교에서 모험을 펼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겠지만, 오늘날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권리가 없는 사람’ 혹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오직 생존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밤낮으로 수행하는 노동은 망토 속에 스스로의 목소리와 마땅한 권리를 꼭꼭 숨겨 놓고 있었으니,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도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광주시청 공무원들과 노동자들에게도 ‘노조’는 그런 것이었다. 광주시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편 이후 용역노동자들은 직접고용 기간제로 고용이 변화됐다. 이제는 관리소장의 눈 밖에 나면 파리 목숨처럼 잘리는 일은 없어졌다. 용역업체가 챙겨 간 눈먼 이윤은 노동자에게 되돌려져 임금도 올랐다. 그렇지만 직접고용 전환도 감지덕지인데 노동조합이라니, 게다가 단체협약은 또 웬 말인가.

그러나 며칠 밤을 고민한 끝에 찾아온 노동자는 떨리는 손으로 노조 가입서를 쓰며 말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 가입하려고요.” 광주시 청사가 24시간 불 켜지고 엘리베이터가 운영되면서 한겨울에도 언제든 온수가 나오며, 수많은 대외행사 이후에도 늘 말끔하게 청소돼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범지역을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것도 구석구석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모니터를 누군가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늘 투명 망토 속에 웅크려 있어야 했다. 간접고용 형태는 스스로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권력에 줄을 서고 불합리한 문제에 침묵하는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시의 공공부문 고용전환 정책 과정에서 시 공무원과 노동자가 함께 알게 된 사실은 이들의 보이지 않았던 노동이 우리 사회에 정말로 중요하고,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히 귀한 노동이라는 사실이었다. 기존 관행이라는 제약과 편견에도 광주시가 직접고용 전환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교섭권을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가려는 시도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았던 노동을 존중하려는 노력 중 하나다. 사용자이자 지방정부가 노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 것은 아마도 처음일 테지만, 그 첫 실험 결과는 유례없이 따뜻하고 희망적일 것이다. 6일 연속 밤낮 없는 교대근무로 건강이 상한 노동자들이 교대근무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 그들의 노동은 고단함이 아닌 긍지와 자부심으로 채워질 것이다. 인원에 비해 너무 넓은 건물을 쩔쩔매며 청소하는 노동자의 업무시간이 적절하게 조정됐다. 그녀들은 ‘권리’를 행사해 이를 성취해 냈다는 자신감으로 웃음을 머금고 새벽 출근길에 나설 것이다.

직접고용 전환 비정규직이 권리를 숨겨 왔던 투명 망토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공공적 노동의 주체로서 지방정부와 동등한 교섭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지만 자신 있게 나의 소중한 일터와 노동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권력에 줄 서지 않고 동료들과 단결할 수 있는 권리, 민주적인 교섭과 힘의 비대칭성에 대해 ‘을’이 집단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권리를 자각한 노동자들은 비로소 공공적 노동의 가치와 개선점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건강한 노동현장이 만들어 가는 사회는 적어도 지금보다 한 걸음은 진보된 사회일 것이다.

광주시 직접고용 전환 노동자들이 첫 임금협약을 통해 얻은 것은 단순히 예산이 증가한 문제나 임금이 얼마나 올랐다는 것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울림이 존재한다. 광주시에는 가려진 노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려는 지방정부 공무원들의 부단한 노력, 그리고 권리를 자각하며 더 나은 내일을 제안하는 노동자의 용기가 공존한다. 광주시가 비정규직이 투명 망토를 벗고 일어서는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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