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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질서의 기본원리 회복부터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시장주의자는 아니지만, 시장경제체제가 진보성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의 경쟁이 적어도 정의롭고 공정하고 투명한 규칙하에서 이뤄지도록 짜여지고,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아가 그러한 공정한 룰의 지배하에서 어떤 플레이어(player)에 의해 혁신(innovation)이 이뤄져 인류보편의 행복증진에 기여하게 된다면, 시장의 실체적 진보성은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최씨성을 가진 누군가나 정씨성을 가진 누군가가 권력에 가깝다는 이유로 경쟁에서 가산점을 받도록 돼 있다면 어떨까. 시장을 주무르는 누군가가 그에게 판돈을 가져다 바칠 것을 상식으로 기대하고, 자신이 임의로 설정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누군가를 하루아침에 폭삭 망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러한 왜곡된 조건이라면, 스티브 잡스도 애플 같은 명품을 만드는 첨단회사를 만들어 내기 힘들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구조적 악조건 속에 있던 천재들은 꾸준하게 창의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귀한 재능을 자신의 행복과 사회의 진보를 위해 쓰기보다, 활빈당을 결성하거나 암살단을 조직해 세상의 먹구름부터 제거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곤 했다.

재산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산증식을 위한 행위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만 그것이 이뤄지는 방식에 대해 법률적인 제한을 둔다. 권력과 유착하거나 공동체의 질서를 망가뜨리고 사회적 약자의 인생을 파괴하는 식의 불법적 행위는 그 어느 개인의 자산증식 추구행위와 양립해서는 안 된다. 자산가가 수행하는 그 어떤 투자행위나 기업행위도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쪽으로 귀결된다면 국가는 법의 이름으로 그것을 제한할 수 있고, 또 제한해야 한다.

이때 공익의 담지자로 간주되는 국가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법 집행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만일 어떤 국가기관의 운영자가 기업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자신의 사익을 중심에 두고 법률을 임의적으로(arbitrarily) 선택해 논리를 비틀며 적용하는 것이 관행화됐다고 치자. 그런 사회, 그런 시장에서는 합리적 경쟁이 아니라 지대(rent)를 추구하는 행위가 만연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게 시장의 객관적 질서를 해치는 권한의 남용 역시 법의 이름으로 제재받아야 할 범죄행위인 것이다.

하나의 자본주의 체제, 하나의 시장경제가 근대적인 민주공화의 정체(polity)와 양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본조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시장의 패자를 돌보고 사회통합적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며 조세정의를 통해 분배질서를 구축해 복지국가를 실현해 가는 류의, 보다 응용된 버전의 시스템 질서를 논하는 수준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2012년 당시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을 때 그녀가 던진 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economic democratization)였다. 대중은 그 필요성을 인지했고 박근혜씨에 대해 반신반의할지언정 일정하게 경제민주화가 내 삶의 기회와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뽑아 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6년 말 현재,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지난 4년간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는커녕 오히려 경제봉건화(economic fudalization)에 앞장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산업 고도화와 더불어 사회통합적인 복지국가의 원리가 작동해 국민을 실질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 최소한의 전제는 공정한 시장경제와 민주적 의사결정, 그리고 그것을 촉진하는 법적 질서가 경제사회체제 운행의 중심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제대로 된 리더가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도 이루기 쉽지 않은 과제다. 그간 우리 사회의 경제와 노동 그리고 복지에서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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