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카마스터. 자동차를 판매하는 대리점 영업사원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서만 1만여명이 일한다. 완성차 전체로는 2만여명이나 된다. 카마스터는 원래 정규직이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현대차가 구조조정 일환으로 처음 대리점 제도를 도입했다. 희망퇴직과 대리점 소사장제 중 택일을 강요받은 정규직 판매노동자 중 많은 수가 퇴직 후 대리점으로 이동했다. 직영점과 대리점에서 하는 일은 똑같았지만 처우에서 격차가 컸다.

현대차 본사에서 직접 채용하는 직영점 영업사원은 정규직이다. 급여와 상여금·지원금·복리후생 등 대리점 영업사원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제반 처우가 낫다. 직영점 정규직은 차를 팔지 못해도 받는 연봉이 상당하다. 이에 비해 대리점에서 일하는 판매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이 대단히 열악하다. 일단 차를 팔지 못하면 수입이 0원이다. 기본급과 퇴직금이 없고 4대 보험 가입조차 안 돼 있다. 교통비나 식대는 물론 휴일근무수당도 없다. 분기별로 월평균 세 대를 팔지 못하면 본사 차원에서 ‘부진자 교육’이란 명목으로 집합교육을 시킨다. 심지어 모욕을 줘서 퇴사를 종용하기도 한다. 정규직은 실적을 이유로 부진자 교육 대상이 되거나 해고되는 일이 없다.

대리점은 본사에서 대리점주와 판매도급 형태의 계약을 맺는다. 대리점주가 판매사원을 채용해서 운영하는 구조다. 대리점당 판매노동자는 평균 10~20명이다. 대리점 판매노동자는 매일 오전 8시30분까지 출근해 전시장과 사무실 청소를 하고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일괄 송출되는 방송에 맞춰 체조를 한다. 본사의 각종 교육과 지시사항을 시청한 후 대리점주가 주관하는 조회를 마치고 나서 일과를 시작한다. 고객에게 현대·기아차 로고가 박힌 명함을 주고 현대·기아차 계약서로 차량계약을 한다. 회사에서 지급해 준 태블릿PC로 고객과 상담하며 차량 재고파악과 계약은 물론 고객관리까지 일괄 진행한다. 그리고 오후 5시30분 귀사보고를 한 후 퇴근한다. 대리점 판매노동자는 직영점 정규직과 똑같은 패턴으로 운영되고, 본사에서도 직접 대리점주를 통해 각종 업무지시나 관리·감독을 한다. 대리점주가 한 달 수천만원의 수익을 얻는 반면 판매노동자들은 건강보험료가 연체될 정도로 생활이 어렵다. 대리점주들의 갖은 갑질 횡포와 폭언·폭행 등 인권유린까지 겪으면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본사는 대리점 판매노동자 입사부터 퇴사까지 모든 업무에 관여하며 지시 및 지휘 관리·감독을 한다. 입사시 본사 4박5일 집합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시험에 통과해야 대리점에서 근무할 수가 있다. 사번 판매코드도 본사에서 승인·발급해 주며 직급 및 승진 또한 본사에서 한다. 게다가 본사는 정기적으로 업무지도란 명목으로 판매노동자의 통장거래뿐 아니라 배우자의 통장 제출도 요구한다.

참다못한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이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지난해 8월22일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판매연대)를 만들었고 노조설립신고증도 받아 냈다. 하지만 출범 직후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간부들이 해고됐고 본사와 대리점주는 탄압을 자행했다. 특히 김선영 위원장에게 대리점주가 행한 폭언과 폭행·협박·강제추행은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불법 부당한 행위들이 지상파 보도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지만 현대·기아차는 지금까지도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리점주들도 노조의 교섭 요청에 응하지 않고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 전국 도처에서 조합원이 있는 대리점에서 폐업과 해고가 빈발하고 있다.

더 이상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버겁다. 다행히 현대·기아차에는 한국 최대 조직력을 자랑하는 정규직 노조가 자리 잡고 있다.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인 판매연대가 단결하면 부당한 노동착취와 탄압을 시정하고 노조활동을 보장받는 길이 열린다. 한 지붕 아래 함께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판매연대가 금속노조에 가입을 신청했지만 현대차지부 산하 판매위원회의 반대로 가입을 승인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민주노조로서의 정체성을 시험받고 있는 셈이다.

완성차 자본과 대리점주들에 맞서 정규직과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모으는 것만이 유일한 활로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수많은 판매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함께 싸워야 마땅하다. 민주노조라면 응당 가장 탄압받는 약자의 요구를 앞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어렵게 만든 노조의 상급단체 가입 문제를 두고 이렇게 내부 갈등으로 시간만 끈다면 이적행위에 다름 아니다. 지금도 판매노동자들의 한숨과 눈물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금속노조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상급단체로서 판매연대 가입을 승인하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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