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전국집배노조·별정우체국지부 소속 비정규 노동자들이 22일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 확보를 촉구하는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 달라.”

“임기 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관심을 가지고 힘쓰겠다.”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청·황·적·백·흑의 초대형 오방낭이 자태를 드러냈다. 오방낭을 열자 365개의 작은 복주머니를 매단 ‘희망이 열리는 나무’가 나타났다. 박 대통령은 이 중 3개의 주머니를 열어 그 안에 담긴 글을 읽었다. 한 집배원이 적은 바람도 담겨 있었다.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은 “희망의 복주머니에 담긴 소망이 이뤄지도록 돕는 것이 저와 새 정부가 할 일”이라며 “복주머니를 전부 청와대로 가져가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약속은 지켜졌을까.

"밥값은 주면서 일을 시켜라"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앞.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절기 소설이라는 이날 우정사업본부 소속 비정규 노동자들이 이틀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우편집중국에서 야간 우편물 분류업무를 하는 우정실무원 김은철(50)씨는 이틀 연속 농성장을 지켰다. 김씨의 요구사항은 하나다. 비정규직에게도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월 13만원의 급식비를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요구사항이 이뤄지기를 바라며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농성을 한다.

김씨는 우정사업본부에 직접고용된 무기계약직이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뒤 해고 걱정은 덜었지만, 정규직과 비교하면 처우가 열악하다. 우정사업본부와 산하기관인 우체국시설관리공단·우체국물류지원단에는 김씨 같은 직·간접 비정규직 1만여명이 일한다.

이들은 그동안 급식비를 지원받지 못했다. 김씨는 “야간근무자들은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경우가 많고, 주간근무자들은 자기 돈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곤 하는데 그마저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우체국 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 올해는 통과할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는 우정사업본부와 산하기관 비정규직 급식비 예산 192억원이 상정돼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문제는 정부다. 매년 정부 예산안을 심사할 때 급식비를 포함한 우체국 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이 포함됐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기재부는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을 내세워 예산 처리에 반대했다. 정부부처 중 급식비가 지급되는 곳은 기재부를 포함해 경찰청·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국세청·방위사업청·국민권익위원회 정도다.

우체국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대통령 약속은 3년8개월이 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을 저버린 대통령 탓에 노동자들은 한겨울 거리에 나섰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전국별정직우체국지부와 전국우편지부·전국집배노조는 급식비 예산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우체국 비정규직 밥값 쟁취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다음주 중으로 국회 예결위에 전달할 계획이다.

출근 준비를 위해 농성장을 나서던 김은철씨가 한마디 한다.

“대통령이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인 입으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면 좋겠어요. 모든 국민이 밥은 먹으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비정규직도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식대만큼은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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