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사태를 1987년 민주화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정치적 격변으로 인식하고 있다. 87년 민주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진단에 따르면 당시에는 대학생으로 상징되는 엘리트 그룹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에 비해 2016년의 광장은 보통 사람들의 분노와 저항이 조직된 지도부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역사적 전환을 빠르게 체감하는 시민들의 에너지를 모아 낼 장(場)을 구축하고 엮어 내는 것이 사회변화의 책임과 신념을 공유하는 운동진영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혁명적이라 칭할 수 있는 지금 국면의 목표가 박근혜 퇴진에서 멈춰 설 것 같지는 않다. 각자가 추상적으로나마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변화의 키워드는 다양하겠지만, 국가공동체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부패한 권력을 퇴진시킴으로써 한국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한 왜곡된 논리들을 해체하고 헌법적 가치에 따른 인간의 자유와 평등, 존엄이 실현되는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선적 과제라 할 수 있는 박근혜 정부의 퇴진이 간단하지는 않다. 박근혜씨는 통치의 책임자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법적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변호인이라는 사람이 검찰 수사를 지연시키고 여성의 사생활을 운운하는 대목에서 사생활의 존엄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멸감이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 관계자는 광장의 촛불을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평가 절하하고, 5%대의 지지율은 대통령에 대한 숨은 지지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 박근혜씨는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고, 청와대는 잔여임기 보장과 증거 인멸, 변혁적 에너지의 분열을 목표로 농성전에 들어갔다. 국회는 특검과 국정조사, 탄핵 등 입법부의 권능을 최대치로 행사해야 한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워터게이트 사건이 드러나고 꽤 오랜 기간을 버텼다. 예상컨대 이 싸움은 몇 주 사이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급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100만 촛불과 전국 각지 광장의 에너지를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시민의 힘을 확인했다. 당면해서는 광장의 해방감과 일상의 무력감이라는 간극을 좁히는 것이 큰 과제다. 길어지는 싸움에서 피로감을 느끼기보다는 현 시국에 대한 상황인식과 사회변화 전망을 공유하는 다수자 연합의 정치적 구상을 모색해 나가자.

오늘날 정치적 환경 속에서는 과도하게 일사불란하거나, 불필요하게 비장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때로는 상징적 분노를 드러내면서도, 일상에서는 변화의 에너지를 조직해야 한다. 퇴근길 저녁 시간에 JTBC 뉴스를 이웃·친구들과 단체로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실천이다. 이미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실천을 조명하고 엮어 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사회구조 문제를 새롭게 직면한 청년주체들도 다양한 토론을 나누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법적 지위만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을 뿐 이미 확실하게 몰락했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서 우리들이 만든 성취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더 나아가 박정희 신화가 여전히 건재했던 미완의 혁명을 넘어설 힘이 우리 안에 있다고 믿는다. 조기에 치러질 것이라 기대되는 다음 대선과 새로운 정부의 수립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의 운영원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론과 변화의 주체로 함께해야 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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