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진 17일 우려했던 교통대란은 없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날 수능입실 시간인 오전 8시10분까지 통근열차는 정상적으로 운행됐다고 밝혔다. 밤잠을 설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켜봤던 국민들도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날로 52일째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전국철도노조(위원장 김영훈) 입장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대형사고와 교통대란은 노사 모두 원치 않은 결과이니까 말이다.

이날 현재 코레일의 열차 운행률은 81.4%다. 수도권 전철·새마을호·무궁화호·화물열차의 운행이 차질을 빚어 나타난 결과다. 장기파업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겉으로는 큰 탈이 없어 보인다. 속살은 그렇지 못하다. 코레일 내부에선 경고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11시 부산발 서울행 KTX184호 열차는 대구 서구화룡 1터널에서 멈췄다. 승객들은 55분간 터널에 갇혔다. 그야말로 공포의 한 시간이었다. 사고 원인은 기관사의 운전미숙이었다. 이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는 비조합원인 ‘대체인력’이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사고를 낸 대체인력은 대통령 전용열차를 운행하는 비조합원 기관사였다. 숙련된 기관사마저 장기파업에 따른 후유증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낸 것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이를 외면한 채 비정규직 기관사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조 파업만 무력화시키면 된다는 행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코레일 내부문건에 따르면 정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KTX가 운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 때 부품을 교환하지 않은 채 중고부품을 돌려쓰는 일도 있다. 감사원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코레일은 안전점검을 소홀히 했고, 적기에 부품을 공급하는 일마저 등한시하고 있다. 장기파업 와중에 코레일은 이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자칫 대형 사고를 부르는 요인이 코레일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15일 대국민담화에서 “노조의 파업에도 열차는 큰 차질 없이 운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코레일·정부의 안전 불감증을 보여주는 담화다. 코레일·정부는 그저 노조 탓만 하면서 안일한 판단을 하고 있다. 철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안전은 뒷전이다.

상식적으로 정부·코레일이 ‘성과연봉제’를 그토록 금과옥조로 여긴다면 단체교섭에서 논의하면 될 일이다. 성과연봉제와 같은 노동조건의 핵심사항을 변경할 경우 사용자측은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과반수 노동자를 대표하는 이의 동의를 얻어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 또한 노사 간 단체교섭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야 할 의제다. 그런데 코레일은 이를 묵살하고 이사회를 열어 취업규칙 변경을 결정했다. 기획재정부가 권고한 성과연봉제 모델은 평가기준 조차 없을 정도로 부실한데도 이런 것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파업 이후 처음 마련된 집중교섭에서도 코레일은 종전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코레일측은 기획재정부가 권고한 성과연봉제 시행을 유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사회 결의를 통한 취업규칙 변경이 불법이라는 지적이 있음에도 코레일은 이 또한 무시했다.

이처럼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강권하고, 코레일이 정부에 끌려가니 장기파업이 빚어진 것이다. 정부가 코레일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있는 마당에 자율교섭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파업 사태 후 첫 집중교섭도 결렬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꼬인 실타래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국회가 중재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조정식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과 홍영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16일 “성과연봉제 시행을 내년 2월로 유보하고, 국회에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합의하자”고 촉구했다. 이는 사태해결을 바라는 국회의 진정성이 담긴 제안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국민안전과 민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코레일은 국회의 제안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아야 한다. "노사의 자율교섭을 보장하라”며 버틴다면 코레일의 처지만 우스운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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