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시민혁명이다.” “명예혁명이다.” “실로 위대한 국민이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꽉 들어찬 광장의 모습을 두고 내놓은 언론들의 평이다. 그야말로 대단했다. 아이를 둘러업고 한손에는 유모차, 한손에는 팻말을 든 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까지. 성별·나이·지역을 떠나 한목소리를 냈다. 110만명. 족히 그 이상일 듯했다.

늦가을 이맘때 진행되는 민중대회는 매년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날(분신일)에 맞춰 노동계·농민·시민들을 중심으로 열렸다. 기억하듯이 지난해 집회에서는 경찰이 불법적으로 살수한 물대포에 백남기 어르신이 돌아가시는 불행한 일까지 있었다.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국정농단에 반대하는 시민 110만명의 범국민행동으로까지 커졌다.

마침 13일 일요일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전태일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전태일 열사 46주기 추념행사가 있었다. 현 시국을 반영하듯 예년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열사 묘역 앞에 줄을 섰다. 열사정신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다는 가슴 깊은 반성부터 여느 때와 사뭇 다른 비장미 가득한 "반드시 열사정신을 실현해 내겠다"는 다짐까지 다양한 발언이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광장의 모습은 마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난 듯했다. 기억하듯이 1970년 11월13일 오후 1시30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외침과 함께. 많은 책에서는 이러한 열사를 두고 ‘인간 예수’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때 열사의 외침이 46년이 지난 오늘에도 유효하지 않는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외침에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따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을 뿐 양자 사이 본질은 하나이지 않는가. 한 세대 반 이전보다 우리의 삶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시민과 노동자들에게는 헌법과 법률은 있으나 마나 한 얘기다. 그래서 광장이 들끊고 있는 게 아닌가.

헌법과 법률을 어긴 이들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도의적·정치적·법률적 책임 어느 것 하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언론 보도와 수사 경과만으로도 대통령과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단순하다. 나라와 사회를 온통 혼란으로 빠뜨린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 “아직 수사 중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등의 반론을 제기하는 자들도 있다.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탄핵 절차에 돌입할 수 없다”는 야당측의 주장도 있다. 법적 책임, 특히 형사책임의 엄중함을 부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대통령과 정부는 형사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라는 데 있다. 90%가 넘는 시민이 대통령과 이 정부를 머리에서 지웠다. 정치적 생명을 다한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탄핵 절차에 관한 언급은 야당의 직무유기에 가깝거나 소추절차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그들 주장의 요지는 검찰이 할 공소장의 범죄사실 정도는 알아야 탄핵 사유를 적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문한다. 이런 논리라면 수사가 아니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와야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그리고 법률적인 범죄사실로 정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 그때까지 기다릴 셈인가. 또한 그토록 부정하고 믿을 수 없다던 현재의 검찰조직이 내놓을 수사 결과를 탄핵사유로 인용하겠다니. 지극히 자기모순 아닌가.

탄핵소추는 전적으로 국회의 자율이다. 탄핵심판 제기부터 유지까지 당사자는 국회란 말이다. 법원이나 정부(검찰)의 의견에 따를 필요가 전혀 없다. 의결종족수를 갖춰 헌법과 법률위반 내용을 적시해 헌법재판소에 보내면 그만이다. 하고 싶다면 수사 및 재판 결과는 심판 과정에서 추가하면 충분한다. 소추내용이 정당한지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따름이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법부다. 그래서 판단기준과 요건이 늘 검찰과 법원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국회도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번 주말에도 광장에는 변함없이 많은 시민들이 모일 것이다. 100만이 아닌 200만,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며 홀연히 떠난 열사의 진정한 뜻을 우리 모두가 하루빨리 깨닫길 소망해 본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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