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상시업무는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이 무너졌다. 상시업무에 왜 비정규 노동자들이 교체돼 일하는지 그 누구도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다만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상시업무라 하더라도 2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들을 계약해지하는 것이 정당화됐을 뿐이다. 2007년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이나 2009년 KBS 계약직 노동자들은 수년간 힘을 다해 일해 온 일터에서 ‘계약만료’를 이유로 쫓겨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계약직 노동자들은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해고를 당연하게 여기고 순응한다. 기간제법이 정착된 이후 2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은 줄어들었고, 노동자들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기에 구인구직란을 뒤적인다.

어떤 노동자들은 이에 저항했다. 고용계약서를 1년 단위로 쓴다는 사실이 '자유로운 계약해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 노동자들이다. 함께일하는재단에서 계약직으로 일해 왔던 한 노동자는 1년11개월29일을 일하고 해고됐다. 2년을 넘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 노동자는 상시업무에서 일했으므로,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믿었고 그 해고에 맞서 싸웠다. 이달 10일 대법원은 “객관성·합리성·공정성이 없는 경우 근로계약갱신 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라고 판결하며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계속 근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갱신기대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판결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근로계약서를 어떻게 쓰든 그 노동자가 계속 일하는 것은 ‘권리’이며,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부당해고라고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갱신기대권이라는 계속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확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하지만 이 판결은 여전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다시 말해 회사가 이 노동자를 계속 일하게 할 것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권리가 있고 그 평가에 따라 계속 일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전제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저성과자 해고’는 현행법으로도 위법이다. 노동자들의 계속 고용은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시업무인가 아닌가에 의해 판단돼야 한다.

이 판결과 다른 판결도 나왔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현대자동차에서 촉탁직으로 일하던 노동자의 계약해지는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 노동자가 일하는 공정이 상시업무인 것은 맞지만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촉탁계약직을 사용한 것이므로 계속 고용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휴가 등에 대비한 초과인력은 ‘상시적’으로 필요하다. 특정 노동자의 자리를 특정 시기 동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시인력은 몇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시 인력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억지다. 실제로 이 노동자는 상시업무에서 일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과 법원은 교묘한 논리로 상시업무 개념을 왜곡하면서 계약직 사용을 정당화하고 있다.

두 판결의 한계는 ‘기간제법’의 한계다. 기간제법에서는 2년 이상 기간제로 일한 경우 정규직으로 간주하도록 돼 있지만, 이 말은 2년 이내에는 자유롭게 해고해도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법원에서 일부 갱신기대권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고용이 인정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갱신을 기대할 만한 조건이 있어야 하거나 혹은 ‘상시업무’라는 것을 노동자가 증명해야 한다. 기업들은 아주 자유롭게 갱신을 기대할 만한 조건을 없애 버릴 수 있고 ‘한시업무’라고 교묘하게 주장할 수도 있다. 기간제법이 조건 없이 2년간 기간제 사용을 정당화해 주는 한 필연적 귀결이다. 따라서 ‘상시업무 정규직화’라는 고용원칙을 다시 세우려면 기간제법을 없애고 근로기준법에 ‘상시업무 정규직화’ 원칙을 명확히 새겨 넣어야 한다.

‘상시업무 정규직화’라는 고용 원칙이 세워지려면 상시업무에서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해고가 부당한 것이며, 내가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한 일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인식하고 싸워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자 스스로도 ‘계약기간’이라는 함정에 빠져 지속적으로 일할 권리가 ‘권리’라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됐다. 해고는 기업의 권한이 아니다.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 계약해지를 통해 기업이 해고 권한을 마구잡이로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스스로가 계속 고용이 자신의 권리라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상시업무 정규직화’ 원칙을 노동자들이 다시 말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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