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와 철로 보수업무 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업체에서 죽어 가는 노동자 대다수는 하청노동자다. 안전업무 외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외주화 금지 관련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국회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위험의 외주화 중단 필요성에 관한 기고를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다섯 차례로 나눠 싣는다.<편집자>



2016년 5월28일 서울메트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장애가 있다는 연락을 받은 노동자가 혼자 정비에 나섰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인1조 작업 원칙은 인력부족 탓에 매뉴얼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1천만 서울시민의 추락사와 자살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크린도어가 2014년 성수역에서, 2015년 강남역에서, 그리고 2016년 구의역에서 청년비정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비업무를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에게 온전히 맡긴 서울메트로에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서울지하철 1호선부터 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달리 5호선부터 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는 정규직이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16년 1월21일 인천국제공항. 중국인 남녀 2명이 여객터미널과 연결된 문의 나사를 풀고 밀입국했다. 인력부족으로 순찰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 보안 공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보안검색 노동자들은 인력부족으로 늘 시간외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최고 보안등급 상향을 요구하는 인천공항에서 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자는 하청업체 직원이다. 상시노동자 8천여명이 근무하는 인천공항에 정규직 비율은 17.5%일 뿐이다. 주요 업무 대부분은 비정규 노동자가 담당한다.

2015년 5월 병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국민의 관심이 쏠렸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은 달랑 마스크 한 장만 착용한 상태로 청소·소독업무를 했다. 병원은 비정규직에게 환자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다. 어떤 병명으로 입원한 환자인지는 개인 비밀에 해당하니,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다. 비정규 노동자는 전염병으로부터 방치되고, 전염원이 되기도 했다.

공공기관이란 국민 생활의 편리를 위하고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기관이다. 이 기관들은 이윤을 위해 안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안전을 포기하려 한다. 정부 평가에 따라 임금·성과금이 달라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큰 원인이다. 공공기관들은 인력과 인건비를 기관에서 필요한 만큼 정할 권리가 없다. 단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해 주는 인력과 인건비를 가지고 나눠 쓸 수 있는 의무만 있다. 심지어 일부 공공기관에 대해 정부는 정규직 인력을 줄이고 인건비를 적게 쓰면 쓸수록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에게 업무를 맡기면서 적자를 면하려 하고, 비정규직 인력도 최소한으로 설계해서 흑자를 내고자 한다. 공공기관이 정부 칭찬만 들으려 한다면 국민은 누구에게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을까.

비정규 노동자들은 모든 업무지시를 정규직에게 받지만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고, 위험하다고 업무를 거부할 수도 없다. 그들은 누구에게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을까.

정부가 밀어붙이는 성과연봉제·퇴출제가 도입돼 경쟁과 성과를 강요받기 시작한다면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무사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 지금의 법과 제도로는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할 수 없다. 지금의 법과 제도에서는 공공기관 노사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정부 말만 들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법과 기준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위험업무를 외주업체에 전담시키지 말고, 적정한 정규직 인력을 배치해 안전업무를 맡겨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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