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들어라. 국민의 이름으로 외쳤다.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청와대는 들어라. 과거의 권력의 집, 경복궁 앞의 광장과 거리에서 현재의 권력의 집에 닿을 수 있게 100만명의 함성으로 외쳤다. 마침내 대한민국 국민은 행동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대선 등 정치일정에 대한 계산도, 탄핵 추진에 따른 역풍에 대한 신중함도 없이 단순하고 분명하게 외쳤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민중총궐기의 날이었다. 2016년 11월12일,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겠다고 선언한 자가 헌법과 국가를 농단한 나라에서 국민은 분노해서 외쳤다. 광장과 거리에서 단호하게 물러나라고 외쳤다. 계산을 권력을 위한 잔머리로 만들고, 신중함을 겁쟁이의 비겁함으로 만들어 버렸다.

성난 민심이라 말했다. 국내외 언론은 이렇게 이날의 외침을 말했다. 그러나 민심이란 말은 가볍다. 그저 국민의 마음, 여론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볍다. 성난 민심이라고 말하는 건 우리의 분노가 용납하지 못한다. 청와대에서 권력자를 끌어내야 한다고 붉은 심장이 터지도록 국민의 분노가 광화문광장에서 100만의 함성으로 폭발했다. 마침내 대한민국 국민은 행동했다.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3·1 운동에서,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선 4·19 혁명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파쇼권력에 맞선1979년 부마항쟁과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그리고, 87년 6월 항쟁에서 식민지조선의 인민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한국 현대사를 질주해 왔던 행동을 했다. 자본이 광포하게 질주하는 거리에서 국립의 묘비명에나 기록된 역사가 우뚝 일어나 행동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이 자본의 세상에서 자본과 권력에 복종해 살아가기만 하는 노예가 아니라고 외쳤다. 헌법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든 주인이라고 광장과 거리에서 행동으로 말했다. '1원 1표'의 세상이 아니라 '1인 1표'의 세상이어야 한다고 100만명의 숫자로 국민은 행동했다. 광화문의 광장과 거리에서 반노동자적 노동개혁 등 재벌 자본을 위한 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해 온 권력,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 물러나라고 행동했다. 2016년 11월12일은 대한민국 국민이 총궐기한 행동의 날이었다.

국민주권의 날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외친 날이었다. 민중총궐기의 날이야말로 국민이 주권자로서 자신의 의사를 행동으로 말한 날이었다. 대통령·국회의원 등 대표 선출행위로 주권자로서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고서 그 임기 동안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언제든지 배신한 권력은 끌어내리겠다고 행동한 날이었다.



2. 내자동 사거리의 경찰차벽에 가로막혔던 것이 아니었다. 국민은 하야하라고 명령했고, 그 명령에 따라 권력자에게 스스로 물러나라고 했다.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함성은 명령이 돼서 차벽을 넘어 푸른 권력의 집에 전달됐다. 그러니 그걸 따르는 건 권력자의 몫이다. 권력자를 끌어내릴 방법을 찾지 못해서, 청와대까지 밀고 들어갈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비폭력·합법으로 순화돼서도 아니었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이 세상의 주인, 그 누구도 그를 순화시킬 수 없다. 그의 행위는 폭력이든 뭐든 이 세상의 법을 초월해서 스스로 정당하다. 그가 비폭력·평화를 외쳤다면 그것은 보다 많은 이와 함께하기 위한 것이지, 법적 테두리에서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해 굴복했던 것이 아니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계산을 모르고 주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초월자·무법자이고 폭력도 정당행위로 되고 마는 범죄자다.

그러니 주권자 국민의 행동을 법을 내세워 불법이라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비난을 받게 된다. 그러니 주권자 국민의 행동을 법의 테두리에서 재단해 질서유지대를 세워 통제할 수도 없고, 그 통제자는 국민에 의해 통제를 받게 될 수 있다. 그러니 들어라. 경찰차벽이 높아서 청와대로 밀고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주권자로서 국민이 물러나라고 명령했고 그것이 이날 국민의 행동이었다. 그러니 주권자는 명령을 따르는지 지켜볼 것이다.



3. 분명히 노동자대오도 대규모였다. 해마다 전태일 열사 분신일 전후로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 중에서 이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불러낸 대회는 없었다. 민주노총 깃발 아래 서울광장에서 명동·충무로·을지로·광화문에서 박근혜 퇴진, 노동개악 성과퇴출제 반대의 행진을 했다. 그동안 노동개악을 추진해 온 박근혜 정권은 물러나라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투쟁해 왔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이 추진되면서 본격적으로 투쟁해 왔다. 노동자대오만이 아니라 민중이 함께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자고 민중총궐기대회를 열어 투쟁해 왔다. 그 민중총궐기를 진압하겠다고 경찰은 살인적인 살수차를 사용했고 백남기 농민을 죽였다. 그리고 그 민중총궐기의 투쟁들이 쌓이고 쌓여 2016년 11월12일이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는 민중총궐기의 날로 정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이 이번 민중총궐기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러나 분명하다. 오늘 국민의 행동이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농단행위가 폭로되면서 시작됐고, 그것을 중심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개악과 성과연봉제 내지 성과퇴출제 등 노동자를 못살게 구는 정부 정책에 반대한 국민의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수많은 노동자가 민주노총의 구호에 따라 노동개악 반대를 외쳤어도 주권자로서 국민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행진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해선 100만의 함성으로 분노해도, 아직은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대해선 100만명이 거리에 나와 분노하지 않는다. 그동안 총파업 등으로 수도 없이 노동자 권리를 저하시키는 노동개혁이라고 외쳐왔건만 오늘 국민의 관심은 노동개악안이 아니라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이 벌린 사달에 있고, 국민의 행동은 노동개악안 폐지가 아니라 박근혜가 퇴진과 구속으로 심판받는 데 있다. 뭐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낙담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대오는 노동자의 구호를 외치면서 박근혜 정권 심판이라는 국민의 행동을 하면 된다. 광장에서의 집회든, 거리에서의 시위든, 그야말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정치파업인 총파업이든 간에 오늘 국민의 행동을 앞장서 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퇴진 투쟁에 노동자들을 떨쳐 세우는 것이다. 노동자가 없으면 그 투쟁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노동자들을 투쟁에 나서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까지는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큰 문제 없이 전개해 왔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랬다. 지금까지는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 아래 하나였다. 그것이 하야든, 탄핵이든, 2선 후퇴든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 아래 하나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퇴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퇴진 이후의 권력을 두고서 하나로 행동할 수가 없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행동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때가 오고 있다. 노동자대오는 하나의 국민행동 속에서 자신의 구호를 외치기 어려운 날이 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4. 어떤 방식으로든 박근혜가 퇴진하든 이후 상황은 그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전개된다. 거기서 주권자로서 국민은 없다. 대표를 선출하는 일이 국민의 일이라고 취급당할 뿐이다. 그걸 대표에게 주권을 위임하는 일이라고 거짓의 선전이 세상을 덮고 국민을 위한다는 자들의 선거운동으로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세상을 심판하고 기획하는 주권자 국민의 일은 없다. 아니 주권자 국민을 배제하기 위한 놀음이 권력을 두고서 전개될 것이다. 대의제를 국민주권주의라고 말하며 국민의 행동을 잠재우기 위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진다. 뭐 이런 날이라도 노동자 대표가 그 권력을 두고서 경쟁이라도 한다면 그저 구경하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꿈은 사라졌고, 선거는 노동자가 아닌 저들의 일이다. 이렇게 이 나라 노동자 앞에서 상황은 전개될 것인데, 노동자를 위한 노동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권자로서 국민의 행동을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국민의 행동을 선거로 잠재우려는 시도에 맞서 주권자로서 국민이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소환제가 제도적으로 도입돼야 국민이 대표를 소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제도가 없었어도 최고권력자를 국민은 끌어내려 심판해 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현대사는 이런 주권자로서 국민의 행동을 위대한 역사로 기록해 왔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국민의 행동을 선거로 제도적으로 잠재우려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스스로 국민을 대표하는 권력이 되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니 그 길은 분명히 새로운 길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노동자를 주인으로 하는 운동이 노동운동인 한 가야 할 길이다. 그것으로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받들고 주권자로서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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