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주최측 추산 100만명이 모였다. 정기훈 기자
▲ 촛불집회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한 가족이 촛불집회 중 사진을 찍고 있다. 정기훈 기자

민중총궐기와 '박근혜 퇴진 3차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논단 사태를 비판하는 아고라이자, 정권 퇴진 이후 한국 사회 미래상을 고민하는 의식화 장소이자, 시민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춤추는 해방구였다.

노동자·농민·청년·학생·빈민·여성·장애인 한자리에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2016 민중총궐기를 개최했다. 대학로·종로·청계천·서대문 일대에서 부문별 대회를 한 노동자·농민·청년·학생·빈민·여성·장애인들이 대회장소로 모여들었다. 남쪽으로는 남대문, 동쪽으로는 종로3가, 서쪽으로는 서대문 서울역사박물관, 북쪽으로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 인파가 들어찼다.

서울행정법원이 투쟁본부가 신청한 '집회제한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경복궁 앞에도 시민들이 늘어섰다. 청계천과 세종문화회관 앞은 물론이고 세종대로로 합쳐지는 골목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민중총궐기 본대회에서는 온전한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백남기 농민 사망 책임자 처벌·사드 배치 저지·노동개악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옥중서신을 통해 "2선 후퇴·거국내각은 민심이 아니며 죄를 지은 자는 죗값을, 불법 정권에 부역한 자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오늘 민중은 개돼지가 아니라 이 땅의 주인임을 보여 줬다. 불법 권력을 단죄해 박근혜를 기어이 끌어내려 달라"고 호소했다.

"박근혜 퇴진 이후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 준비하자"

박근혜 정권 퇴진에 그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는 발언에 시민들은 기꺼이 화답했다. 투쟁본부는 노동·농업·빈곤·청년학생·여성 등을 주제로 한 13대 요구안을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민중총궐기 시작 초기에 "성과퇴출제 중단하라" 혹은 "전쟁위기 막아 내자" 등의 구호에 다소 머뭇거리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갔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과 백남기 농민 딸 백도라지씨, 김충환 사드 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안전사회를 위한 정책 변화와 농업살리기 정책, 평화정책 필요성을 제기했다. 발언이 끝날 때마다 수십만 시민들의 박수가 서울광장 하늘을 덮었다.

대회 선언문이 낭독되는 10여분간 광화문 일대는 적막에 휩싸였다. '박근혜 정권 퇴진' 앞머리 글자를 따서 작성한 선언문을 통해 참가자들은 "보수정권 교체가 아니라 민중의 새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민중총궐기가 끝나자 청와대 포위를 위한 대행진이 시작됐다. 이미 경복궁 앞까지 시민들이 들어찬 탓에 실제 행진은 원만히 이뤄지지 못했다. 몸을 청와대 방향으로 돌린 시민들은 "박근혜는 하야하라" 구호를 연신 외쳤다. 416가족협의회와 민중연합당 등 수천명은 경복궁역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시위대가 청와대 인근 경복궁역 앞까지 진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비슷한 시각 광화문광장에서는 박근혜 하야 촉구 콘서트가 열렸다. 인파에 막혀 행진을 하지 못한 수십만 시민들은 '하야가'를 부르거나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을 즐겼다. 프랑스혁명 당시 반혁명 인물·세력을 시민들이 직접 처형했던 '단두대'도 광화문광장에 등장했다. 시민들은 단두대 모형물을 사진에 담았다.

▲ 100만 촛불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박근혜 퇴진하라." 정기훈 기자


전국 뒤덮은 "박근혜 퇴진" "전경련·재벌도 공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6시30분 집회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고 갔다.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가 3분여간 서울시내를 휘감았다. 촛불을 켜고, 휴대전화 불빛을 비춘 채 함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같은 시각 서울뿐 아니라 촛불을 켠 전국 도시 수십여 곳에서 자동차 경적과 함성이 퍼져 나갔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같은날 오후 7시30분 광화문광장에서 공동주최한 '박근혜 퇴진 3차 범국민행동'에는 시민 100만명이 참여했다. 주최측은 "서울광장과 이어진 모든 도로가 인파로 가득 차 있고 경복궁역·종로 일대도 발 디딜 틈이 없다"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100만명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다닌 성심여고 학생 두 명이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박근혜 선배님은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됐다"며 "우리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제발 그 자리에서 내려와 달라"고 소리 높였다.

시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박근혜 하야'라고 적힌 왕관을 쓴 학생들과 손피켓을 들고 등자보를 몸에 두른 이들이 대회장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종보 변호사(민변 박근혜 퇴진 특별위원회)는 "검찰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순실에게 직권남용·사기 미수 혐의를 적용하면서 전경련과 재벌을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있다"며 "군사보호비밀법 위반·공무상 비밀누설·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뇌물죄 정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박근혜는 청와대에 여전히 앉아 있다"고 비판했다. 과거 민주화운동 투쟁현장을 지킨 투사이자 가수인 정태춘씨와 조PD·이승환 등 음악인들도 문화제 무대에 올랐다.

▲ 광화문 일대를 시민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민중총궐기 사진공동취재단


"노동자는 노조로, 시민은 시민단체로 모여 새 세상 만들자"

민중총궐기와 3차 범국민행동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하지 않으면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경고를 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주최측은 "노동자는 노조로, 시민들은 시민단체로 모여 민주주의를 지키고 세상을 바꿔 나가자"고 호소했다.

공식행사는 12일 저녁 10시30분께 끝났다. 하지만 경복궁역 앞 교차로에서는 청와대 행진을 요구하는 시민 수천명과 경찰 간 대치가 13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골목을 막은 경찰버스 차벽을 손으로 두드리며 "차벽을 열어라" 또는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끊임없이 외쳤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마이크를 들고 "참사 당일 밝혀지지 않은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문화·예술인과 일부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농성을 했다. 투쟁본부와 비상국민행동은 19일 전국 촛불집회, 26일 서울집중 촛불집회를 계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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