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벗어 두었으니 그는 텐트 안에 들었다. 그 앞 울퉁불퉁한 돌길을 오가는 차 소리가 밤새 그치질 않고, 아침이면 얼음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작은 비닐 집에서 그는 기절하듯 잠이 든다고 일기에 적었다. 현금 20만원을 찾아 애들 엄마에게 쥐여 주며, 다 쓰기 전에 돌아오겠다며 웃었다던 그는 지금 남은 돈이 있을까를 걱정한다. 가방에 구겨 넣은 짐은 사흘치였다. 노숙 생활이 일주일째다. 온갖 노동현장과 숱한 참사의 자리를 증언하던 길거리 사진사의 집에 값나가는 물건이라고는 카메라뿐이었다. 메모리 카드가 차고 넘치는 동안 낡은 신발은 더 낡아 바닥이 매끈했다. 그는 사진을 발로 찍는다. 거기 사람 많은 광장에서 신발은, 또 사진사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종종 발에 채고 짓밟혔으나, 검찰청 복도에 남겨진 국정농단 비선실세의 고급 신발 한 짝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내가 이러려고 노숙하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고 그는 고백했다. 광화문 네거리에 자기 집을 갖는다는 거,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근사한 일이라며 사람들을 꼬드긴다. 동참을 호소했다. 퇴진하면 퇴거하겠노라 고집부린다. 노순택의 노숙이 끝나기를, 뜨거운 곰탕 한 그릇 다 비우고 언 몸 녹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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