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시행 이후 사라지는 듯했던 기간제 노동자 계약갱신 기대권을 되살리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계약갱신 기대권은 일정 시점까지만 일하기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기간제 노동자라도 계약갱신을 기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해고(계약해지)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법률적 권리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0일 비영리법인 함께일하는재단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11월 “객관성·합리성·공정성이 없는 경우 근로계약갱신 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라며 갱신기대권을 인정했다.

2년에서 하루 모자란 1년11개월29일 일하고 해고

해고 당사자인 장아무개씨는 재단에 기간제 노동자로 입사해 2010년 10월26일부터 2012년 10월25일까지 1년11개월29일을 일하고 계약해지를 당했다. 장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판정과 판결은 제각각이었다. 사건을 처음 심리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정당한 계약해지”라고 판정했다. 반면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며 부당해고로 봤다.

이어진 소송에서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은 중앙노동위 판정을 뒤집고 “정당한 계약해지”로 판결했으나 서울고법은 또다시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날 서울고법 판결을 확정했다.

핵심 쟁점은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갱신 기대권 인정 여부였다. 대법원은 예전부터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상 규정이 없더라도 여러 사정을 종합해 계약이 갱신될 만한 기대권이 인정될 경우 사용자의 갱신 거절은 부당해고로서 효력이 없다”(대법원 2007두1729)는 입장을 유지했다. 사용자가 1년짜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재계약 없이 몇 년간 기간제 노동자를 반복 사용하다가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2007년 7월1일 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달라졌다. 기간제법은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초과해 사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간제법이 ‘계약기간 2년 후 무기계약직(정규직)’이라는 일종의 기준점을 제시한 만큼 갱신기대권이 사라졌거나 있더라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흐름이 강해졌다. 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랐다.

“기간제법 시행이 갱신기대권 소멸 사유 안 돼”

그러나 이 사건을 다룬 서울고법 제7행정부(수석부장판사 민중기)는 “기간제법 입법취지는 기간제 근로계약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근로자 지위를 보장하는 데 있다”며 “기간제법 시행이 곧 재계약 기대권 형성을 막는다거나 이미 형성된 재계약 기대권을 소멸시키는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법원이 갱신기대권을 폭넓게 인정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해고자 장씨는 △프로젝트 계약직(기간제)이 아닌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일반직 기간제로 입사했고 △이전에 입사한 일반직 기간제 3명 모두가 정규직으로 전환한 선례가 있으며 △사용자가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왔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장씨는 또 단순업무를 하는 일반직이 아닌 당시 진행업무를 총괄하는 고위직이었다. 계약이 갱신될 만한 기대 사유가 많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기간제법 시행 이후에도 “갱신기대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는 대법원의 첫 확정 판결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사건을 대리한 양지훈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기간제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소극적이던 하급심과 달리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근로자 보호라는 입법취지를 충분히 살려 전향적인 방향으로 판결을 내렸다”며 “법원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갱신기대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당사자인 장씨는 “해고를 당하고 상처가 컸는데,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려 기쁘다”며 “4년 동안 지치지 않고 소송을 할 수 있도록 돈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 준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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