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걱정이 넘쳐 난다. 분노의 깊이, 촛불의 숫자만큼 걱정도 많아지는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촛불의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수언론의 맞장구를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이들이 앞으로 어떤 프레임으로 국면을 전환할지 경계하는 시선도 있다. 경제도 걱정되고, 이역만리 미국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현재의 정국에 끼칠 영향도 걱정거리 중 하나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2008년 광우병 파동,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광장을 가득 채웠던 분노의 촛불은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채 사그라졌다. 아픈 기억과 경험은 ‘설마, 이번에도’라는 우려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와 걱정을 앞장서 제기하며 민심을 왜곡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제1 야당의 원내대표라고 하는 자는 “광장은 광장의 방식대로 이야기하고 또 국회는 국회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야’와 ‘퇴진’을 외치는 국민과의 선긋기다. 그렇다고 국회 방식대로 ‘탄핵’을 준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은 걸핏하면 ‘책임 있는 야당으로서’ 혹은 ‘수권 가능한 정당으로서’라는 수식어로 광장과 제도권 정치를 분리시킨다. 하야 후 조기대선 실시를 찬성하는 국민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의 두 배가 넘는다는 사실은 이들의 정치 셈법 계산기엔 입력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국민은 고작 30%의 지지율에 취한 정당에게 ‘책임’을 기대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수권의 기회’를 결코 부여하지 않는다.

진정한 책임은 저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대구 여고생 조성혜양의 발언을 들어 보자.

“저는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 저를 위해 피땀 흘리며 일하시는 그러나 사회로부터 개돼지·흙수저로 취급받으며 사는 저희 부모님을 위해,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수험생 언니를 위해, 또 아직은 너무 어려서 뭔지 잘 모르는 동생을 보며, 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과 미래를 주기 위해서 저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촛불집회에 나온 여고생의 ‘책임’ 이야기가 어떤 위정자의 그것보다 가슴 깊게 새겨진다.

국민이 하야·퇴진을 외치는 것에 일각에서는 ‘혼란’과 ‘헌정중단’ 등을 꺼내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멀게는 광주항쟁과 가깝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정국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계엄군이 물러간 5일 동안 해방구가 된 광주에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해 모든 봉사를 조직하고, 사전계획도 없이 도청 주위로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자유롭게 협력했다. 2004년 초유의 대통령 탄핵 당시는 어떠했나.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촛불을 들었다. 역사 속에서 혼란과 헌정중단을 만드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제도 정치권이었다.

여고생 조혜성양은 또 얘기했다.

“여러분 전 두렵습니다. 오늘 저희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그리고 이 사건의 본질이 언제나 그랬듯이, 다른 사건들처럼 점차 희미해지고 변질돼 잊힐까 봐.”

12일 민중총궐기가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성혜양이 지고 있는 책임을 나누고, 걱정과 두려움을 깨끗하게 씻어 내기 위해 더 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모이길 기원한다.

그래서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노라고” 하며 희망의 촛불을 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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