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마치 현재 정국을 예언하기라도 한 듯한 영화 <내부자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와 주류언론 주필, 검찰 실세가 재벌 총수에게 ‘접대’를 받는 자리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법’ 처리가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해 재벌 총수가 묻고 나머지 손님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오늘의 뉴스를 보자. 재벌들이 마치 권력형 갈취의 피해자인 양 행세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들의 탈법적 지배력을 유지하고, 노동자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전횡하기 위해 유리한 입법·정책을 권력에 청부하고 그 대가를 지급해 왔다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지금 “박근혜 하야·퇴진”을 외치는 들불 같은 여론 속에서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볼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재벌 편향적 경제 운용, 한반도에 전운을 불러일으키는 대북 공세와 한·미·일 동맹의 강화,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짓밟는 파시즘적 통치와 노동자·민중의 권리 압살에 짓눌려 있던 국민이, 그러한 국정운영에 최소한의 정당성마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경악하고 분노하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 속에는, 생계를 위해 발버둥치는 서민의 삶을 옥죄는 제도와 정책들이, 그저 권력과 재벌의 벌거벗은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과 박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노동자운동과 민주노총은 “박근혜 퇴진” 이후를 시야에 넣고 싸워야 한다. 박근혜 하야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고, 보수정치권은 현재의 위기를 질서 있게 봉합하고 새로운 권력을 재창출하기 위해 각자 주판알을 튕기며 합종연횡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내분 이후 새롭게 전열을 짜 들어가든, 더불어민주당이 ‘정권교체’에 가장 유리한 방식을 계산하며 자신들의 행보를 가져가든, 그 밖의 야당들이 대선을 앞두고 합종연횡을 하든, 국정농단의 몸통인 재벌체제와 분단체제의 기득권층과 대결할 가능성은 없다.

지금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은 재벌체제와 분단체제에 맞서 실제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제를 쟁취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증명된 민주주의의 기제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노동자의 기초적 권리를 방어하고, 재벌의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더 많아지고 더 강해져야 한다는 점을, 지금 국민에게 선전하고 정치권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동조합이 집중해야 할 일은 조합원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요구와 투쟁이어야 한다. 지금 정국에서 가장 깊숙이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임금에 무권리, 불안정한 일자리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체제의 부정의한 민낯이 드러난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지금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의 파업 투쟁이 자신들의 생존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이 생활 가능한 임금, 반복되는 해고와 실업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최소한의 울타리로서의 노동조합을 할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 이를 중심적 요구로 조직하고 대중적 투쟁으로 만드는 데 민주노총은 사활을 걸어야만 한다.

이것이 현재와 같은 ‘혁명적 정세’에 걸맞지 않은 ‘부문적 요구’라고 생각하는가. 1987년 민주화 투쟁은 보수정치세력의 재편과 대통령 직선제 속에서 질식해 갔지만, 같은 시기 열린 공간에서 진행된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자를 권리 주체로 세워 내고 평범한 서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박근혜 하야·퇴진 정국이 재벌 및 분단체제의 관리자를 바꾸는 소극(笑劇)으로 귀결될 것인지, 노동자·민중의 권리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투쟁의 시발점이 될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열쇠를 노동자운동이 쥐고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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