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청년희망재단이 뜨고 있다. 한국노총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년희망재단의 재원인 청년희망펀드 조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여름 떠들썩했던 청년희망펀드다. 대통령이 앞장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책임지겠다며 재단 설립을 지시했고 1호 가입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당시에도 진정성이 있는지,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무엇인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그리고 정작 운영은 누가할 것인지 등등에 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 한국노총이 입수한 재단 자료에 따르면 삼성 250억원, 현대 200억원, LG 70억원, 신세계 65억원, 롯데 50억원 등 이른바 재계서열 순으로 질서 있게 펀드에 참여했다.

과연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했을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모금 방법이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과 다르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요즘 나오는 뉴스를 보면 가관이다. 적지 않은 수의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재단에 기부했다고 한다. 수사·재판·사면·탈세에 이르기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청년희망펀드 기부 또한 대기업에게는 대가를 바라는 거래였음이 분명하다.

청년희망재단이 ‘청년일자리를 해결하자’는 원래 설립목적과 커다란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자리 사업이라고 하면 취업정보 제공, 일자리를 위한 교육, 재정적 지원 등이 주요 사업이어야 할 것 같지만 정작 재단이 관심을 뒀던 역점사업은 청년들의 해외취업을 지원하는 게 재단의 간판사업이다. 묘하게도 이 정부의 역점 사업인 케이-무브(K-MOVE)와 겹친다.

결과적으로 재단은 청년일자리 정책으로 낙제점을 받은 정부 사업을 대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재단에 참여한 인사들이 최순실씨 일당과 끈끈한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만약 국정농단 사건이 밝혀지지 않고 그대로 진행됐다면, 재단의 재산이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정리됐을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일자리를 절실히 원하는 청년들을 ‘창조’니 ‘문화산업’이니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자기 잇속이나 챙기지 않았겠나. 혹여 이미 챙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직 밝혀야 할 내용이 많다. 한국노총은 재단에서 1차로 받은 자료를 분석한 후 지출내역과 거래업체명, 500만원 이상 기부한 공직자 명단, 재단 설립부터 현재까지 파견받은 공직자 담당업무와 활동비 지출내역 등 재단운영 전반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댈 여유가 없다. 운영내역을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재단 설립으로 풀겠다는 생각은 정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지켜 주는 일은 국가의 제1 책무가 아닌가. 청년희망재단의 실체는 노동정책의 근간을 정부가 아닌 민간(비선) 재단에 떠넘긴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의 청년노동정책은 실패했다. 아니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고작 정부는 우월한 돈과 지위를 이용해 정책을 왜곡하기만 바빴다. 우리는 장그래를 내세운 17억원짜리 고용노동부 광고를 기억한다. 노동부는 줄기차게 “청년일자리 부족이 아버지 탓”이라고 광고했다. 한 지붕 아래 아버지와 청년을 이간질해서라도 정책 실패를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기업도 한통속이다. 배임이니 횡령이니 뇌물이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도대체 그렇게 경기가 어렵다던 대기업들은 어디서 그렇게 큰돈을 마련했단 말인가. 청년희망펀드든지, 미르·K스포츠재단이든지 따지고 보면 기업이 낸 돈은 모두 청년들의 부모들이 일한 결과물이지 않는가. 힘써 일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이란 말이다.

노동계가 줄기차게 청년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자고 할 때도 “그럴 돈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돈이 없어 임금피크제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다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손목이 비틀려 만져 보지도 못하고 버릴 돈이었다면 차라리 노동자들의 요구를 따라 청년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3년 반이라는 물리적 시간 이상으로 힘들고 길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은 유독 우리나라 청년들의 일자리를 걱정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대책이 없었다. 그저 해외로 보내고 싶어 했다. 지난해 봄 중동 순방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느닷없이 노동부 장관에게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 보라. '다 어디 갔냐'고 하면 '다 중동 갔다'고 할 수 있을 만한 노동정책”을 지시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제야 그런 발언을 한 이유를 알 만하다. 배후가 있었다. 짐작이지만 최순실씨 일당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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