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10대 청년을 위로하며 시민들이 사고 현장에 써 붙인 글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고 있다. 매년 일터에서 2천여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문제가 개인의 부주의 탓이 아니라 사회가 지켜주지 못해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산재사고는 사회적 문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80% 이상 발생


광주 남영전구 수은중독 사고,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기사 사망사고, 메틸알코올 실명사고 등 최근 발생하는 산재사고의 대부분은 하청·파견노동자와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6월 말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업무상재해와 업무상질병으로 재해를 당하거나 사망한 노동자의 81.3%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사망자·재해자 모두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큰 폭으로 늘었다.<표 참조>

50인 미만 사업장이 산재 위험에 크게 노출된 결정적 시기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 등으로 경제상황이 악화하자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기업규제완화법)을 제정해 산업안전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이로 인해 안전·보건관리자 선임의무 사업장이 30인 이상에서 50인 이하로 줄어들게 됐다. 안전·보건관리자 선임의무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업주가 산재예방을 위한 활동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안전보건담당자 실효성 논란
산재은폐 처벌조항 완화까지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2018년부터 다시 변화를 맞는다. 노동부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도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을 지난달 말 개정했다. 30명 이상에서 50명 미만 사업장은 2018년 1월부터, 20명 이상에서 30명 미만 사업장은 2019년 1월부터 담당자를 둬야 한다.

반면 산재 발생 보고대상 기준은 완화했다. 기존에는 산재로 사망자가 나오거나 3일 이상 휴업을 한 경우 사업주는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노동부 관할 관서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노동부는 개정안에서 휴업기한은 4일 이상으로 변경했다. 산재조사표를 기간 안에 제출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즉시 부과하도록 하던 것도 행정지도를 먼저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게다가 제조업·임업·폐기물처리 등 업종이나 고용규모에 따라 제한적으로 관리자를 선임하게 했다. 산재 사각지대가 여전할 전망이다. 전체 사업장 175만2천여곳 중 1만9천여곳(1.1%)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재조사표 제출의무는 기업들의 산재 은폐를 막기 위한 조치인데 처벌조항을 완화하면 은폐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견·하청업체 산재 잇따라
'위험의 외주화' 해법 없나


파견·하청업체 산재발생이 증가하면서 안전·관리문제를 사업장 규모의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구조 문제와 연동해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서울 성수역·구의역·강남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수리기사 사망사고 이후 이 같은 여론이 부쩍 높아졌다. 해당 사고는 서울지하철에서 발생했지만 산재통계에는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록됐다. 지난해 남영전구 수은중독 사고도 4단계에 걸쳐 철거작업을 맡았던 하청업체가 비난의 화살을 먼저 맞았다. 올해 초 드러난 메틸알코올 중독사고는 삼성·LG 휴대전화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했다. 2차·3차 하청업체에서 불법파견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이 사고는 '삼성 메탄올 실명사고'로 불리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책임을 하청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다. 반면 파견노동자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의해 사용사업주가 책임진다. 원청에 종속된 하청업체, 소규모에다 잦은 폐업을 일삼는 하청업체가 노동자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사내하도급 업체는 원청에게 용역이나 재화를 제공하기 때문에 같은 회사로 봐야 하고, 원청이 안전보건 조치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성을 강화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처장은 특히 "파견노동자 대부분이 불법파견 형태를 띠고 있는 데다, 안전보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가 모호한 상태에서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부는 제조업 불법파견을 해결하기 위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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