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박근혜 정부 들어 노사 또는 노정 갈등 핵심에는 늘 임금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꼬이기만 할 뿐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었다.

노사 최대 현안인 통상임금과 휴일근로·연장근로 가산수당 중복할증 문제는 새누리당이 노동 4법 패키지 처리를 공언하는 바람에 지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는 새로운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노사 자율이나 대화·협상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을 택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을 비롯한 현안은 더욱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금융·공공부문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계의 누적된 불만은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마주하면서 대통령 하야 목소리로 분출되고 있다.

수년째 풀리지 않은 통상임금·가산수당

통상임금과 휴일·연장근로 가산수당 중복할증 문제는 노사 최대 현안이다. 지금도 법원 판결에 따라 기업별로 적게는 수십·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수백억원의 뭉칫돈이 왔다 갔다 한다. 노사정 관계자 모두 “시급히 통과돼야 할 노동관련법 1순위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법원의 관련 판결이 잇따랐고 해법 모색을 위한 국회와 노사정 간 협상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년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은 지난해 9월 관련 내용을 담은 근기법 개정안을 발의한 뒤 이른바 노동 5법으로 묶으면서 사태가 꼬여 버렸다. 정부·여당의 근기법 개정안은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합의문에 노사정 대표자들이 서명한 다음날(지난해 9월16일)에 발의됐는데, 합의 내용과 달랐다.

노사정은 통상임금에 대해 “명칭을 불문하고 소정근로에 대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이라고 정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임금항목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정부·여당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통상임금 제외 임금항목에 ‘업적·성과에 따라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금액’이 들어갔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문구다.

휴일·연장근로 가산수당 문제에 대해서도 노사정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노동계는 그동안 법원 판결에 따라 “휴일에 연장근로를 할 때에는 추가로 50%의 수당을 중복해 지급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사실상 중복수당 지급의무를 없애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미흡한 법안조차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을 비롯한 다른 노동관련법과 함께(패키지)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확대 방안을 담은 비정규직 관련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통상임금·가산수당 문제는 뒷전이 됐다. 정부의 비정규직 확대 정책이 노사 현안마저 덮어 버린 것이다.

철도 최장기 파업 부른 정부의 독주

박근혜 정부에서는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최근 최장기 파업 기록을 경신한 철도노조와 금융·공공기관 노조들의 파업이 모두 이로 인해 발생했다.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금융·공공기관을 개혁한다면서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했다. 도입 여부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거나 임금을 삭감했고 심지어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기관장들을 위협했다.

그 결과 지난해 316개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올해는 목표 대상이던 120개 공공기관 전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정부는 “공공부문 개혁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성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반발이 심하다. 금융·공공 노동계는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에 맞서 지난달 연쇄파업을 벌였다. 공공금융기관·시중은행 노동자 7만여명과 공공부문 노동자 6만5천여명이 참여했다. 당시 파업에 나선 철도노조는 9일 현재 44일째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금융·공공부문 노조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선 것은 정부가 최근 3년간 복지 축소와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를 노동계와 대화 없이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한 공공기관 노조간부는 “축적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적된 불만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대통령 하야 요구로 폭발하고 있다. 한국노총·민주노총뿐만 아니라 금융노조·공공연맹·공공노련·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이들은 대통령 하야 이유로 최순실 국정농단과 함께 “정부의 독선과 불통, 일방적 정책 추진”을 꼽았다.

성과연봉제 강압에 멀어진 임금체계 개편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여 도입한 성과연봉제는 법원에서 무효화할 가능성이 높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어기고 이사회에서 강행처리하는 방식으로 무리하게 도입한 탓이다. 성과연봉제는 평가 결과에 따라 일부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대신 일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일부 노동자라 할지라도 임금삭감은 노동조건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근기법은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 보호를 위해 사용자가 취업규칙(사규)에 정해진 노동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노동자 과반수 또는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의무화했다. 그럼에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120개 공공기관 중 절반 가량인 52곳이 노동자 동의 혹은 노사합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의결로 제도 도입을 강행했다.

이들 52개 공공기관 노조들은 최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일방적인 이사회 의결로 도입한 성과연봉제는 명백한 위법”이라며 “집단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줄 경우 정부는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잃게 된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노동계 반감이 커진 것도 문제다. 정부·재계는 연공서열식(호봉제)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가장 반대하는 성과연봉제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노동계 반발을 키웠다. 임금체계 개편 동력을 상실한 셈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호봉제가 아닌 직무급이나 숙련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다양한 임금체계 중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고집하면서 개편 필요성을 주장하는 일부 노동계의 목소리마저 설 자리를 잃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통상임금·가산수당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임금체계 개편과 성과연봉제만 강조하고 있다”며 “설령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더라도 왜 필요한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선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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