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십여년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건설하고 있었던 북한 신포의 경수로 원전 건설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비바람으로 인해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가 뜨지 못해 육로를 이용하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북한지역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지게 됐다. 평양까지 가는 길이 워낙 멀고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함흥 근처 노동당 간부 휴양소에서 숙박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북한의 당 간부를 위한 최고급 시설이 갖춰졌다는 휴양소였지만 전기사정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전기는 하루에 불과 몇 시간만 공급됐고 그나마도 질이 좋지 않아서 백열등은 수시로 껌벅거렸다. 대도시인 함흥 시가지에서조차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암흑천지였다. 적어도 필자가 보고 느낀 당시 북한의 전력상황은 단순한 불편 차원을 넘어 인류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문명을 제약하고 있었고 기본적인 의식주마저 위태롭게 할 정도였다. 민족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통일의 필요성을 깨닫는 기회도 됐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서 삶을 규정하고 있는 전기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인간이 발견한 물리(자연) 법칙, 그리고 인간에게 내어 준 자연의 힘(자원)에 인간노동이 더해지면서 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전기는 이제 단순히 생산의 힘이 아니라 문명인으로서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더 나아가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중요한 가치를 주고 있다. 때문에 필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윤 확대 수단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 보편적으로 제공받아야 할 공공서비스로서 전기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세계 여러 나라의 전력산업 발전과정을 비롯한 역사, 그리고 산업구조를 살펴보고자 했던 이유도 전기가 단순히 인간생활의 필수서비스 정도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지켜 내기 위한 절대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함께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안타깝게도 많은 나라에서 전기가 상품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공공성을 상실했고, 그 여파로 인해 공급 불안과 요금 폭등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민영화한 전기가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면서 공급 축소와 시장조작 같은 광범위한 시장실패를 초래했고, 그 부작용은 심각했다. 영국과 미국·캐나다 등 급진적으로 시장경쟁과 민영화를 추진한 국가들에서 벌어진 일이 대표적이다. 캘리포니아 사태는 정전과 요금폭등, 그리고 엔론 같은 부도덕한 기업들의 시장조작 사례가 불거지면서 정권이 교체되는 일도 발생했다. 불가리아와 칠레·페루 등지에서는 민중의 광범위한 저항과 정권 교체라는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혼란도 초래됐음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 또한 일제 강점기 때 성장하면서 전쟁물자 생산 수단이 되기도 했고, 분단과정에서 5·14단전이라는 북한에 의한 강제적인 전력공급 중단 사태를 빚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설비가 파괴되는 비극도 경험했다. 경제개발 시기에는 생산에 절대적인 동력원으로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력노동자들의 희생이 수반되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변화는 여러 나라의 경험처럼 시장경쟁과 민영화라는 구조개편이 시작되면서 비롯됐다. 전력노동자의 문제제기와 저항, 국민의 반대여론이 거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구조개편을 강제로 밀어붙였다. 전력산업이 분할되고 발전부문의 경쟁체제가 확대되면서 비정상적인 전력거래로 인해 민간발전사의 부당이득이 사회문제화됐고, 에너지 소비를 왜곡시키고 있는 비정상적인 요금체계, 전력산업의 시장화 정책 확대로 인해 전국적인 단전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제 전력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 화석연료 중심의 대량 생산방식을 넘어 지속가능한 에너지 수급체계를 위한 기술의 변화, 그리고 제도와 산업구조가 모색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에너지 신사업 육성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다만 이런 정책의 중심에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전력의 공공성, 예컨대 전력이라는 공공서비스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보편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본의 이윤 확대를 가속화하는 수단에 불과할 것이며 광범위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기는 인권이다. ‘개·돼지’로 폄훼되는 99%의 민중을 도외시한 1%의 질주가 한국 사회를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이제 전기는 인권으로서, 그리고 절망의 사회를 희망의 사회로 만들기 위한 공공성 강화의 바로미터가 돼야 할 것이다. 필자 또한 전력노동자로서 그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지면을 내어 준 매일노동뉴스, 그리고 그동안 졸필에 응원을 보내 주신 많은 동지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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