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근로복지공단 소속 기관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기준 통계상 서울질병판정위는 전체 산업재해 신청건수 9천854건 중 2천871건을 심의했다. 인정률은 33.9%로 6개 지역 질병판정위 중 최하위다. 낮은 인정률의 원인에는 최선길 서울질병판정위 위원장 문제가 중심에 있다.

금속노조는 올해 5월25일 최선길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집단 농성을 한 바 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노조에 서울질병판정위 운영 개선과 최선길 위원장 사퇴 권고를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최선길 위원장은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조는 지난달 10일부터 다시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노조가 최선길 위원장 퇴진과 질병판정위 개혁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던 13가지 이유와 당시 서울질병판정위가 문서로 답변한 사항을 보면 사안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최선길 위원장은 심의위원들이 의사를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았다.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회의 운영 문제와 도를 넘은 판정 개입 문제가 불거졌다. 서울질병판정위는 이에 대해 “의사들 이외의 위원들에게도 자유로운 의견개진 및 충분한 토론을 보장하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겠다”고 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운영규정 제25조에 따르면 질병판정위 위원은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고, 심의에 필요한 사항을 요청할 수 있다. 최초 판정회의에서 판정권한이 없는 위원장이 위원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막고, 사건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 주는 발언을 한 것은 그 자체로 자격이 없다. 5년여 동안 산재보상보험심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위원장이 위원들의 의견 개진을 막는 행위를 본 바가 없다. 민주적인 회의구조를 확립해야 할 의무를 지닌 위원장으로서 이와 같은 의견개진 방해행위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자료검토 미보장 문제에 대한 답변도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서울질병판정위를 제외한 산재심사위·산재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는 모두 심의자료를 미리 위원들에게 제공 또는 공개하고 있다. 사전자료를 볼 수 있는 ‘웹하드’ 구축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위원장에게는 사건 건수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건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토대와 기반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질병판정위는 심의보류 요구 묵살에 항의하는 것에 대해 “소수 위원들이 요구할 경우 규정에 따라 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심의보류 후 재조사를 해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운영규정 제25조2항에 따르면 위원은 언제든지 증거자료의 보완 등을 요청할 수 있다. 이러한 증거자료 보완요청이 사실관계 판단에 영향에 미칠 수 있는 사항일 경우 이를 반영해서 심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산재심사위에서도 개별 위원들의 보완 요청을 중요한 발언으로 여기고 수용하고 있다.

편파적 위원 선정 문제에는 “통계를 별도로 구축해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응답했다. 통계를 지금까지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도 놀랍지만, 실제 지난해 서울질병판정위 심의회의 참석현황 리스트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16회 이상 참석한 위원들 21명을 보니 최선길 위원장이 추천한 위원은 8명, 경총 추천한 위원은 7명, 한국노총 추천은 5명, 민주노총 추천은 1명이다. 금속노조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사자와 대리인 의견개진을 제한하는 문제도 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운영규정에는 참여한 대리인과 재해자 중 1인에 한해 발언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그런데 최선길 위원장은 대리인인 공인노무사 발언에 대해서도 면박을 주거나 발언을 끊는 행위도 많았다. 벼랑 끝에 선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행한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억울하고 답답해 그 자리에 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최소한 말이라도 하도록 했어야 한다. 서울질병판정위는 이에 대해 “법정대리인과 재해자 모두에게 충분한 발언기회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 밖에 금속노조에서 주장하는 △상병명 불일치시 불승인 문제 △지사의 조사와 전문가 평가 무시 문제 △판단근거가 부족한 산재불승인 문제 △정보제공 거부의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자 심각한 사항이다. 금속노조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과연 서울질병판정위의 독단적 운영 문제가 드러날 수 있었을까. 최선길 위원장은 즉시 사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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