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문대 변호사(민변 사무총장)

지난주부터 이어진 언론보도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자백을 통해 국민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지인과 그 측근들에게 이 나라의 운영을 맡겼던 사실을 알게 됐다. 더 나아가 대통령이 그들과 함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국가 권력을 함부로 행사했음도 알게 됐다. 이들은 국가시스템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활용했고 국가 정책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게 나라냐"는 한탄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 한동안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운명이 한동안 이들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대통령과 측근들의 이러한 행태는 형사적 범죄행위다. 이들의 행태는 공무상비밀누설죄, 뇌물죄 및 제3자 뇌물공여죄, 직권남용죄 등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형사범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행태는 권력을 사유화해 공화국의 정체를 훼손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을 유린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이들의 행태는 대통령이 전면에 섰고 국가시스템을 정면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지난 정권의 권력형 비리나 대통령 주위 인사들의 일탈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그 불법성과 해악이 심각하다. 따라서 이 사건의 본질은 ‘헌법질서 파괴행위’다.

대통령만을 놓고 보면 위 사안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및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해당해 탄핵사유에도 정확히 부합한다(헌법 제65조, 헌법재판소 2004헌나1 결정).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헌법수호를 선서한 대통령이, 국민에게서 받은 위임을 배신한 정권이, 마지막으로 행할 수 있는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민의 그런 뜻을 애써 무시한 채 자리보전에만 급급하면서 미봉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정치검찰 출신의 민정수석 임명과 일방적인 국무총리 임명 강행은 얄팍하고 무모한 수습책에 불과하다. 대국민 사과와 검찰조사 수용 의사표시는 계산되고 조율된 타개책일 뿐이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공모자 및 가담세력도 동시에 물러나야만 한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퇴행적 정치를 일삼아 온 새누리당은 해체하거나 전면 개편해야 하고, 국가 권력의 수장들은 바로 사임해야 한다. 최순실을 비롯한 최씨 일족들은 대통령을 업고서 행한 숱한 국정농단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통령과 최씨 일족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조종하면서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하고 제 이익만을 챙긴 재벌들과 이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한 관료들 역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일부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 불안감이 큰 일부 국민은 대통령 퇴진이 헌정질서 중단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퇴진이 우리 사회에 예기치 못한 큰 혼란을 가져온다고 볼 수 없다. 대통령 퇴진은 헌법에 규정돼 있는 사태로서 그 해결책 역시 헌법에 규정돼 있다. 대통령 퇴진 후 60일 이내에 행하는 조기선거가 그 해결책이다. 자격 없고 무능한 대통령이 초래할 위험과 불안에 비하면 대통령 퇴진과 조기대선이 훨씬 더 안전한 방편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착수하면서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고 최순실을 구속했지만, 국민은 그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검찰이 보인 행태나, 지금도 대통령을 수사조차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최순실에 대해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를 적용시키는 것을 놓고 보면 국민 불신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국회가 임명하는 특별검사가 맡아야만 한다.

진실의 일단만이 드러났는데도 국민의 분노 수위는 정점을 향한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비밀 등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면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대통령은 사적 인연을 모두 끊었다고 했지만, 우리 국민은 대통령과의 인연을 모두 끊었다. 그는 민주공화국에서는 살 수 없는 유신의 폐족일 뿐이다. 익숙한 골방 속에 머무는 것이 그가 자신의 자괴감을 더는 유일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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