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근로기준법이나 헌법의 전문을 포털사이트에서 찾아서 읽어 볼 것을 종종 권한다. 권유에는 전제가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 귀찮아야 한다. 예컨대 시험기간에 방 청소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던가, 밀려 있는 업무가 있는데 SNS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상태는 헌법 전문을 읽기에 최적의 컨디션이다.

우리 삶의 제도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의 글자를 하나씩 뜯어 읽는 일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존재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진기한 경험이다.

개인적으로는 제11조를 좋아한다. 1항은 이렇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2항은 압도적이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현실 세계와 법조문의 불일치를 직면할 때 헌법의 감동은 크게 퇴색한다. 대통령과의 관계를 위시해 국가 예산과 공적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한 정황과 사실이 존재함에도 검찰로부터 오랜 여행의 피로를 배려받는 사인(私人)의 존재는 법률보다 우월하다. 돈도 실력이고 부모를 원망하라는 발언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생생한 자백이다.

11월2일 대통령이 신임 국무총리 인선을 발표했다. 시민들과 국회는 격노했다. 김병준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현 정국에서 새로운 총리를 임명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시각 기업들을 대상으로 회비를 걷어 온 것으로 알려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자신의 행동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회의록 문건도 확인됐다. 대통령 본인과 주변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요구하는 다수 시민들의 목소리의 정당성이 커지고 있다. 이 요구는 단순히 집무실 책상을 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통령 임기 3년10개월 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들에게 법적·정치적 책임을 명확하게 지워야 한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순리대로 가야 한다.

헌법 제1조2항이 명시하는 국민의 주권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권한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국가의 정상적 운영에 대한 주인의식을 공유하자는 현실의 요구이자 미래의 지향이다. 사실로 확인된 국가 예산과 인사의 비정상적인 흐름만 놓고 보더라도 민주주의는 곧 민생(民生)이다. 매일 같이 뉴스와 기사로 쏟아지는 환멸스러운 소식을 접하는 스트레스도 사회적 비용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

낮에는 일상을 살고, 밤에는 토론을 하며, 주말에는 촛불을 드는 주인의 시간이 열렸다. 시시각각 분기탱천할 필요도 없고 작은 사건들에 조급해하거나 섣불리 좌절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외면하지 않는 동료시민들의 존재가 곧 이 나라의 총체적 역량이다. 목소리를 갖기를, 내기를 망설이는 누군가에게도 연대의 손길을 내밀자. 함께 광장에 서자.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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