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다른 내용을 쓸 참이었다. 김선영 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위원장의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혀 카마스터(자동차 판매노동자)의 고충과 요구를 싣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만 따져도 1만여명에 이르는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들이 사용주들로부터 갖은 탄압과 고초를 당하면서도 변변한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폐업해고가 빈발하고 위원장에게 폭언을 넘어 상해를 입히면서 폭행·추행한 내용이 막장 수준이라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는커녕 일방적으로 국무총리를 교체했다는 뉴스를 듣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자동차판매연대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맘먹고 주제를 바꿨다. 김선영 위원장께 죄송하다.

이게 나라인가. 연일 쏟아지는 박근혜·최순실발 속보로 온 국민의 분노게이지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개돼지로 취급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영화 같은 현실에서 더욱 절감하고 있다. 정말 부패하고 무능하고 파렴치한 대통령이다. 청와대 참모들의 행태도 가관이다. 이리저리 말바꾸기로 일관하더니 이젠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한창이다. 이 정부에서 국록을 먹은 국무총리와 장관들은 또 어떤가. 반민생 정책을 앞장서 실행하면서 수많은 민초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 장본인들 아닌가. 시정잡배만도 못한 자들이다.

최순실·정윤회를 비롯한 비선실세들의 오만방자한 국정농단에는 말문이 막힌다. 전무후무한 국가권력 사유화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와 사기행각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 것이었는지 명백해졌다. 지금까지 진보·보수 언론을 막론하고 폭로한 사실들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제 발로 물러나야 마땅하다. 통치자가 헌법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려면 당선 이후에도 합법적 권위를 확보해야 한다. 부정선거 시비에 시달려 온 박근혜 대통령은 권좌에 앉아서도 불법을 일상적으로 저질렀다. 샤머니즘 정치, 신정정치라는 조롱과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타락했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 심지어 군통수권자였다니 아찔하다. 2016년 가장 전근대적인 후진적 정치의 폐해를 매일 목도하는 국민은 열받으면서 탄식을 절로 내뱉는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이런 걸 정부라고, 이런 걸 공권력이라고 믿다니 내가 미쳤지. 역사의 시곗바늘이 수십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미궁에 빠진 의혹도 부지기수다. 특히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숨겨진 7시간은 박근혜 정권의 명운을 단박에 결정지을 또 하나의 핵심 뇌관이다. 304명의 생명을 앗아 간 세월호 참사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 책임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재벌 상납과 평창동계올림픽과 무기거래 비리 등 최순실 일가 관련 의혹투성이 비리 일체도 숨김없이 까밝혀야 한다. 남북관계와 외교관계, 사드 배치 등 국가적으로 중대한 의사결정에 전방위적으로 최순실이 관여한 정황도 엄정하게 규명해 시비를 가려야 한다.

새누리당은 해체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인형처럼 부리며 사리사욕을 채운 건 최순실 일당만이 아니다. 아니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기득권 세력의 실체가 더 무섭다.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으로서 온갖 반민생·반민주·반인권 정책을 입법발의하고 추진하면서 박근혜 정부와 한몸이 돼 역할해 왔다. 정부의 독단과 비리를 견제하고 서민을 대변해야 할 여당이 썩은 고기를 함께 나누며 국민을 바보로 만든 것이다. 새누리당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역겹다. 대의민주주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정체성을 상실한 비리정치집단 새누리당은 해체해야 마땅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짜 몸통은 재벌이다. 삼성을 비롯해 최순실 일당을 지원한 재벌은 반대급부로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저성과자 해고와 단체협약 일방 변경, 기간제 기간 연장, 파견 확대 등 노동개악을 통해 이들이 얻거나 얻을 현재 이득과 미래 이익은 천문학적인 것이었다. 거기 비하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에 삥 뜯긴 돈은 껌값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고 최순실·정윤회 일당이 처벌받고 새누리당이 해체되더라도 재벌 구조가 온존되는 한 오늘과 같은 국정농단과 헌정유린 사태는 다른 모습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를 좀먹는 재벌경제 구조를 혁파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 방책이다.

대통령과 내각 퇴진! 새누리당 해체! 재벌경제 혁파! 미증유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국가와 정부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려면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과제들이다. 지금도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정국 주도권을 유지한 채 꼬리 자르기와 사실 은폐로 정국을 호도하려는 음험한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부패한 살인권력 집단을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권자인 국민이 거리와 광장으로 나와 헌법 제1조의 정신을 실천해야 할 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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