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1970년대와 80년대가 아닌 2000년대에 위장취업으로 해고된 노동자.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거제까지 조선노동자들을 위해 묵묵히 길을 가는 활동가.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사무국장 김중희.

김중희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른바 IMF 세대다. 대학 졸업이 하필 취업의 길이 막혔던 구제금융기였던 것. 다시 직업전문학교를 다녀 용접공이 됐고 2001년 현대미포조선 선장부로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3년 현대미포조선노조 집행부 조직쟁의부장으로 내정되자 사측이 전력을 조사했고 전북대를 나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외환위기 이후 대졸자들의 취업문이 좁아지자 직업전문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시기였다.

사측은 그를 곧바로 해고했다. 학생운동을 했던 그의 활동과 구속 경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해고일자가 12월5일인데 결혼식이 12월7일이었으니, 해고장을 기가 막히는 결혼선물로 받은 셈이다.

2003년 5월 지방노동위원회와 2004년 10월 중앙노동위원회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복직 결정을 내렸다. 사측은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투쟁하던 김중희는 울산지역해고자협의회(울해협) 사무국장, 의장 활동을 병행했다.

같은 울해협 회원인 필자와도 수시로 연대하며 오랜 세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투쟁했다. 필자가 각종 해복투 위원장을 맡은 시기에 함께 활동했고, 민주노총 노동위원회사업단장 시절에는 부산지방노동위원회 노동자위원을 맡아 지역 해고노동자들을 대변했다. 특히 박현정 울해협 의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픔 속에 출범한 박현정추모사업회에서는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박현정의 죽음을 계기로 연이어 출범한 ‘울산지역연대기금’은 건강과 경제적 문제로 고통당하는 해고자들의 문제를 운동의 숙제로 무겁게 받아안는 계기가 됐다. 울해협과 울산지역연대기금은 이런 연유로 우리에게 각별하다. 해고자 지원과 원직복직은 우리 두 사람이 평생 안고 갈 운동적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해고자가 해고자의 심정을 헤아린다고나 할까. 이렇게 선량하고 치열한 김중희의 긴 해고투쟁 기간 동안 사법부는 끝내 그의 편이 되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위장취업으로 해고가 확정됐지만 그는 원직복직의 꿈을 여전히 접지 않고 있다.

지난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사무처장 역할을 끝내고, 올해 3월부터는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사무국장을 맡았다. 2012년 4월에 활동을 시작한 ‘새터’는 지역의 열악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활동가들이 마음을 모아 마련한 곳이다. 거제·고성·통영지역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고 산재신청을 지원하고 있다. 노동자 권리찾기를 위해 노동법 등에 대한 지식과 노조 결성 문제까지도 상담한다. 거제의 조선업을 상징하는 옥포동에 둥지를 틀고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하청노동자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거제는 현재 조선업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최일선이기에 새터와 사무국장 역할이 주목된다.

올해 6월 정부가 발표한 전력산업 민영화 계획에 반대하는 국회 선전전을 했는데, 조선산업 노조활동가의 구조조정 반대농성과 선전전을 함께 진행했다. 국정감사 직전까지 함께하면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구조조정의 거대한 쓰나미 앞에 선 그들과 함께 노동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29일 거제로 향했던 희망버스는 우리에게 조선업 구조조정의 문제를 전국적으로 알려 내고, 집중적으로 대응해 달라고 요청했다. 필자에게는 산업 구조조정의 벽을 마주하고 있는 현 시기 노동운동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과제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조직과 투쟁으로 돌파해야 할 시기에 면벽 수행이라니, 만시지탄이 따로 없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10월 말까지 연장된 희망퇴직으로 인해 무기(無期)계약직 ‘1Q직원’ 전원이 희망을 접는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비정규직을 필두로 힘없는 노동자들이 생존 수단인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고 해고 광풍에 부초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해고 광풍 한가운데에서 동분서주하는 해고노동자 김중희의 노고와 조선 구조조정 해고자들을 기록한다.

해고가 만연한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한편에서 강제퇴직을 당하는 노동자들과 재기를 위한 희망의 배를 제작하는 현대미포조선 해고자. 한국 노동계급이 해고 없는 세상을 향해 항해할 희망의 배 진수식을 기다리기로 한다. 무너지지 말고 다시 일어서자! 조선소 밖에서 이 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호를 묵묵히 건조하는 조선노동자 김중희와 해고자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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