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전 KBS 이사

‘순실이 상왕 사건’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기 한 달여쯤 전, 그때 화두는 북한 핵미사일·사드 배치 논란·롯데 사태 등이었다. 앞의 두 사건과 그다지 연관성이 없던 롯데 사태는, 국방부가 주장하던 기존 사드 배치의 최적지를 성산포대에서 롯데 성주골프장으로 9월30일 변경한다고 발표하고 롯데가 이를 수용하면서 연관성이 끼어들었다. 대한민국 누구나 이들 사건에 대해서는 나름의 정보와 판단을 갖고 있을 터다.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른바 ‘경제논리’라는 틀을 통해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것도 성찰에 도움이 될 듯하다.



1. 롯데그룹은 성주골프장을 내주고 정부로부터 수도권 부근 국유지를 제공받는다고 한다. 성주골프장이 시가로 1천억~1천500억원인 반면 국방부는 600억원대의 국유지를 제공하려는 모양이다. 성주골프장은 롯데그룹(구체적으론 롯데상사)이 보유하고 있는 전국 4개 골프장 중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알짜배기에 해당한다. 그런 곳을 반값 정도에 정부에 넘겨야 하는 모양새다. 정상적이라면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거래는 성립됐다. 모두가 짐작하듯이, 금전상으로는 손해 보는 것이지만 수천억원에서 수조원 대의 비자금 조성과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롯데 사태의 몸통 격인 신동빈 회장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보상으로 받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비금전적 이득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롯데그룹은 금전적으로 그리 손해를 보는 게 아닐 수 있다.

롯데상사는 2009년 465억원에 성주골프장을 사들였다. 국방부가 쳐준 600억원대 수준은 이보다 꽤 높은 것이다. 또한 성주골프장이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김영란법 시행 전의 일이다. 이를 감안하면 접대 골프는 시들할 것이고 성주골프장의 가치는 크게 떨어지리라 추정할 수 있다. 1천억~1천500억원은 옛말이라는 얘기다. 롯데그룹이 정부로부터 대가로 받는 보상부지를 매각해 현금화하고 골프장을 더 짓지 않겠다고 한 것도 향후 녹록지 않은 시장 상황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예상 현금흐름과 기대이익이 낮아져서다.



2. 최적 부지를 또 다른 최적 부지로 변경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어느 쪽 하나는 말 그대로 ‘최적’이 아니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이런 모순을 저지르며 사드 배치를 강행할 태세다. 이와 동시에, 최근에는 미국의 전략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해 달라는 얘기를 꺼냈다가 미국한테 보기 좋게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서 그것이 알고 싶다. 남한 내 사드 배치와 남한 내 전략 핵무기 배치는 대체재 관계인가 보완재 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대체재와 보완재 개념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그걸 선택하면 이건 안 될 경우’이면 대체재, ‘그걸 선택하면 이것도 선택해야 필요성이 높아지면’ 보완재 정도로 해 두자. 한국 국방부는 혈맹 관계인 한-미 동맹을 감안해 보완재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방부의 기억력은 매우 나쁘다. 미-소 냉전 시절, 옛 소련의 흐루쇼프가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다 케네디의 반발에 부닥쳐 일촉즉발 위기까지 간 ‘쿠바 위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꼴이라서다. 미국의 전략 핵무기 등 전략적 자산을 한국에 배치해 달라는 소리는, 미국의 전략적 대당에 북한을 끼워 넣으라고 앙탈에 가까운 주장이다. 미국이 이를 들어줄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 또 다른 ‘쿠바 위기’를 부르는 사안에 해당한다.

사드 배치와 전략 핵무기 배치는 대체재 관계에 있지도 않다. 오히려 둘의 관계는 사실상 독립재에 가깝다. 미국의 전략적 자산을 한국에 배치하는 건 애초부터 선택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에 그나마 선택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에 있는 보완재나 대체재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 대체재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사드 배치와 미국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라고 할 수 있다. 실효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한, 미군의 전술 핵무기가 한반도 재배치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전술 핵무기는 주한미군의 위험 노출도를 한껏 더 높이는 것인데 기껏 사드를 배치한다고 해 놓고 위험성에 더 많이 노출시킬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술 핵무기 재배치는 주한미군 마음이다. 탄저균도 별다른 동의절차 없이 몰래 들여왔던 게 최근의 일이다.

물론 보완재로 바뀔 가능성도 농후하다. 성주골프장에 사드 1개 포대를 배치한다고 해도 수도권은 물론이고 주한미군도 보호막에서 벗어나 있다. 사드 포대를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돼 왔다. 괌에 배치돼 있는 미군 사드 포대의 목적은 4개 섬으로 이뤄진 미-일 동맹에 따라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보다는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와 하와이를 지키는 게 주력 목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사드가 주한미군의 완벽한 보호막이 될 경우 전술 핵무기는 보완재 차원에서 재배치가 논의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전 KBS 이사 (cjsa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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