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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을 위하여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공화국은 없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름뿐인 껍데기였다. 대통령을 앞세운 최순실과 그 일당은 대한민국의 권력을 자신들의 것으로 가지고 놀았다. 언론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지만 그들이 한 짓에 비하면 너무 약한 표현이다. 대통령 연설문 외에 각종 외교·안보문서를 사전에 제공받아 검토했다거나 정부 요직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11월1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된 최순실이 행사한 권력은 대통령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서 박근혜는 이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들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대한민국을 공화국이 아닌 봉건왕조로 추락시켰다. 국무회의는 유명무실했다. 최순실의 뜻대로 결정돼 집행됐으니 헌법이 규정한 대로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가지고 대통령과 심의하는 국무위원은 없었다. 수첩의 지시가 심의를 대신했다. 청와대를 차지한 그들이 대한민국을 왕과 환관의 나라로 만들고 말았다. 헌법이 규정한 국가제도는 그들이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기구에 불과했다. 그들의 권력 행사를 법으로 포장해 줬고, 국가의 행위로 공인해 줬으며, 그것은 국민의 의무가 됐다. 그렇게 철저히 짓밟혔다. 2016년 11월1일 나는 차마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이 최순실과 박근혜의 나라를 두고서 우리는 감히 공화국이라 말할 수가 없다.



2. 자유는 없었다. 우리의 공화국에서 우리의 자유는 없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없었다. 인민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헌법에 명시돼 있고(제10조 이하), 심지어 명시되지 아니한 것도 보장된다고 선언하고(제37조1항), 그것을 위해 국가는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해 왔다. 그러나 노동자의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헌법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한 근로조건의 기준(제32조)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장시간 노동을 규제해야 할 법정근로시간제는 노동제로서 기능하지 못한다(근로기준법).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은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사용자가 지켜야 할 노동제가 아니다. 상여금 등을 제외하고 산정하는 통상임금제는 초과근로의 대가 임금이 법정근로의 대가 임금보다 가산해서 지급하지 못한 채 수십 년 운영돼 왔다(근기법).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을 조장하는 법률에 의해 노동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기간제법·파견법 등). 헌법은 노동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근로의 권리를 선언했지만 대한민국의 법률은 노동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의 기준까지는 보장해 오지 않았다. 그러니 노동자를 위한 노동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런 것들이 보장되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1주 52시간, 60시간의 노동제를 도입하고, 통상임금 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한 통상임금제를 도입하겠다고 노동개악을 밀어붙여 왔을 뿐이다.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한 권리다(제33조).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노동자의 자유로서 선언된 것이었다.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노동자가 단결할 자유였다. 특별히 국가가 배려해서 보장해 줘야 할 사회적 기본권이라고까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적어도 노동자가 단결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요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자유는 없었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 지켜 내기 위한 국가의 법률은 없었다. 이 나라에서 국가의 권력은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행사되지 않았다. 자유에 대한 구속만 있었을 뿐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비롯한 법률은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집행됐다.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이 행사됐는가. 노동자의 파업은 규제해야 할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대규모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부 장관과 검찰총장, 대통령까지 나서 "불법 엄단, 파업 자제"를 말했을 뿐이다. 국가권력이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파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도록 친절히 파업을 안내한 사례가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있었던가. 그것은 철저히 국가의 일이 아니었다. 사용자의 재산권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자유로 노동기본권을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했음에도 권력은 철저히 국가의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짓기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자유 없는 나라니, 오늘 노동자에게 우리의 공화국이 짓밟히고 있다고, 분노하라고 말한다는 것이 뜬금없기는 하다. 지난 29일 토요일 저녁 나는, 청계광장에서 공화국을 떠올렸고, 광화문광장에서 노동자의 자유를 생각했다.



3. “루이(왕)를 심판할 자만이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다.” 공화국은 공화국의 적을 심판하고서야 지켜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유는 자유의 적을 처단하고서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프랑스혁명 당시인 1792년 11월13일 생 쥐스트는 말했다. 공화국을, 자유를 위해서 투쟁을 한 자만이 공화국을 건설하고, 자신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고서 노동자는 공화국을 위해, 자유를 위해 어떻게 공화국의 적, 자유의 적에 맞서 싸워 왔던가. 노동자단체·노동조합이 관제와 어용의 껍데기를 벗는 데에만 몇십 년이 걸렸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것은 진행 중이다. 물론 노동자도 시민으로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에서 시민·학생의 항쟁으로 권력의 항복선언, 6·29 선언이 나오고서 우리의 노동자, 노동조합은 7·8·9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했다. 그것은 시민·학생의 뒤를 이은 투쟁이었고, 민주노조 건설투쟁이었다. 공화국을 껍데기로 만든 파쇼 권력에 맞서는 투쟁에서 노동자는 선두에 서지 못했었다. 노동자가 앞장서 쟁취한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다. 이른바 1987년 헌법체제는 그렇게 왔다. 96년 말 시작된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화국을 위한 투쟁도, 노동자의 자유를 위한 투쟁도 아니었다. 정리해고 등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 날치기 저지투쟁으로 끝이 났다. 날치기된 노동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고, 정리해고 등 노동법이 개악됐어도 그 반대투쟁이 총파업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없었다. 이 나라에서는 루이를 심판하는 노동자 투쟁은 없었다. 그러니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자유가 없다고 해도 노동자의 이름으로 싸워 쟁취해 내지 못했으니 그건 노동자 스스로의 탓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2016년 11월 대한민국은 공화국이 껍데기만 남았다. 공화국의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위임을 배신하고서 공화국을 파괴하고 국민을 짓밟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최순실의 것만이 아니었다. 최순실의 것은 대통령 박근혜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농단하도록 방임하고, 나아가 대통령이 헌법상 국가작동원리를 파괴했다. ‘국정농단’의 종범인지 아니면 정범인지, 그 무엇에 해당하든 박근혜 대통령은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사저가 아니듯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박근혜의 사유물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순실 일당과 대통령의 권력을 공유해서 사유화했다. 그들에겐 국무회의조차 대한민국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해야 할(헌법 제88조) 국무회의가 아니었다. 그저 최순실 일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국가기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현재 청와대의 권력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대한민국의 권력을 사유화했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철저히 농락했고, 전경련과 협잡한 것인지 협박한 것인지 몰라도 재벌의 지원을 받아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해 그 재단을 운영했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라는 이름조차 부끄러운 지경이 돼 버렸다. 그래서 오늘 분노하고 있다. 청계광장에서, 광화문광장에서, 그리고 전국 주요 도시의 광장에서 "이게 나라냐" 또는 "하야하라"고 외치며 시민·학생은 분노하고 있다. 공화국을 되살리겠다고 집회와 시위를 하면서 분노하고 있다. 도대체 이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이 뭐라고 공화국을 위하여 분노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이 국민을 위해서 무얼 해 줬다고 시민·학생은 오늘 광장과 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집회하고 시위를 한단 말인가. 사회보장도, 실업률도, 비정규직도, 자살률도, 남녀 차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라는 헬조선의 나라가 무엇이라고. 그들은 분노를 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고(헌법 제1조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동조 제2항), 대한민국은 최순실 일당과 박근혜의 것이 아니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최순실과 박근혜에게 있지 않고, 대한민국의 권력은 ‘우주의 기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혼이 비정상’이 아닌 국민으로서 청와대를 향해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 분노의 광장과 거리에서 아직 노동자의 것은 없다. 민주공화국을 위한 노동자의 분노는 아직은 없다. 노동조합의 깃발을 들고서도 시민·학생에 파묻혀 "이게 나라냐"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공화국을 파괴한 박근혜 권력과 그에 편승한 재벌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조직적인 행동은 대한민국의 광장과 거리에서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권력과 재벌 자본이 농단한 나라에서 이제 공화국을 위하여, 노동자의 자유를 위하여 노동자의 이름으로 외쳐야 할 일이다. 어제의 구호는 이미 낡았다. 세상은 노동자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구호를 외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광장과 거리를 노동자의 구호로 덮어야 한다. 노동자의 자유를 위하여, 공화국을 위하여 행동해야 할 때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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