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조선일보가 판을 깔고 주도하는 정세

온 나라가 순식간에 박근혜를 욕하는 상황을 사회운동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현재의 판을 깔고 주도하는 세력이 다름 아닌,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재벌 등의 지배집단이라는 점 때문이다. 태블릿PC는 JTBC 손석희가 아니더라도 폭로될 사안이었다.

최순실 퍼즐이 꿰어지며 확인되고 있다. 조선일보가 우병우를 공격하며 시작된 싸움은 친박 김진태가 송희영을 치면서 청와대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한데 재계가 조선일보 편에 서면서 상황은 반전했다. 재벌까지 함부로 대하는 최순실 일당과 박근혜의 무능하고 전망 없는 경제정책에 화나 있던 재계는 여소야대 총선 결과를 보고 조선일보 편에 섰다. 미르와 K스포츠 폭로였다. 그래서 최순실과 차은택 등이 9월 초에 미리 도망치듯 출국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재벌과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박근혜를 버렸다. 한국에서 그게 뭘 뜻하는가. 국가정보원과 검찰을 비롯한 모든 집단이 박근혜와 선 긋기 시작할 거라는 의미다. 세월호 참사 때의 박근혜 7시간 등 실제로 하야시킬 수 있는 무언가도 쥐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폭로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체제 근간을 흔드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과 우병우, 문고리 3인방 따위를 쳐내면서 청와대와의 전쟁에서 팔부 능선까지 오른 조선일보는 내치를 담당할 책임총리를 임명하는 것으로 마무리 방점을 찍으려 한다.

어디도 아닌 수구보수 대표 조선일보가 청와대와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박근혜 일당이 대선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누리당이 내년 대선에서 재집권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야권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산된다. 유승민처럼 박근혜와 선 그은 후보가 새누리당에 선다면, 국민의 반박근혜 정서까지 끌어안게 된다. 재집권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반기문을 세우더라도 박근혜와 선을 긋게 만들 게 분명하다.

조선일보는 이미 이겼다고 판단하면서 기세등등하다. 마무리 방점을 찍기 위해, 그동안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10월29일 주말집회까지 홍보했을 정도로 자신만만하다. 마무리 뒤엔 국민 여론을 개헌과 대선으로 충분히 몰아갈 수 있다고 판단한다.

바로 여기에 사회운동이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정세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비서관들 사표에 이은 최순실 일당 구속, 그리고 황교안 국무총리 사퇴 발표로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에 대한 욕설과 조롱은 국민 술자리 안주로 여전히 남을 것이다. 1987년 6·29 직선제 선언 이후가 딱 그랬다.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로 펄펄 끓던 6월 항쟁의 열기가 순식간에 멈췄다. 그리고선 대선으로 빨려 들어갔다. 따라서 현 정세가 11·12 총궐기를 거치며 상승국면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느긋하게 예측하며 대응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넘어야 할 세 개의 선

지금 즉각 투쟁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총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내년 대선까지 밀고 갈 수 있는 사회운동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정세를 이어 갈 수 있다.

첫째. 당면한 박근혜 하야·퇴진 투쟁을 더 세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려면 경찰이 그은 선을 넘어야 한다. 첫 주말집회는 훌륭했다. 미조직 대오들이 깃발보다 앞서 광화문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넘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민주노총 대오는 지난해 총궐기 후유증으로 머뭇댄다. 대중조직이 머뭇댈 때 운동가조직이 역할을 해야 한다. 운동단체와 정파 등이 앞장서 뚫어 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시점에서 경찰 선을 넘자는 주장을 물리력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길어야 유치장 48시간이다. 지금이 박근혜 퇴진투쟁 꼭짓점이다. 한 단위론 벅찰 수 있다. 운동단체와 의견그룹들이 공동으로 활동가대회라도 급하게 소집하면 어떨까.

둘째. 국민이 골목과 가정의 선을 넘도록 추동해야 한다. 거리로 나오게 해야 한다. 이것은 조직대오인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총파업은 총파업대로 고민하되, 울산과 화성에서, 인천과 광주·거제에서, 전국 곳곳에서 퇴근과 동시에 조합원들이 사업장에서 대오를 형성하고 일정한 거리까지 행진하도록 하자. 자전거·오토바이와 도보 대오가 결합한 생산직의 장엄한 행렬, 그리고 여의도에서의 사무직 행렬, 그것은 사업장 안에서의 파업보다 더 위력적이고 효과적이다. 국민의 거리 진출에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방침 없이도 곧바로 준비할 수 있는 일이다.

셋째. 박근혜 퇴진·하야 구호의 선을 넘어야 한다. 철도노조 파업과 백남기 농민·사드 배치·재벌 문제를 결합시켜야 한다. “그런 이유로 박근혜는 하야·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최순실만으로는 정세 지속성이 약하다. 퇴진·하야 투쟁에 대한민국 개조투쟁을 결합하자. 재벌·비정규직·청년실업·최저임금 등을 엮어 평등국가로의 개조를 주장하자.

마찬가지로 최순실은 정의국가로, 사드는 평화국가로, 경주 지진은 탈핵국가로, 세월호는 안전국가로 연결하자. 그것을 국민에게 제시하자. 그래야 박근혜 하야·퇴진 투쟁에 힘이 붙을 수 있다. 지속성도 도모할 수 있다. “이게 국가냐? 대한민국 개조하자!”라는 구호가 더불어 외쳐져야 한다. 그것이 ‘근혜퇴진 국가개조’ 또는 ‘근혜하야 국가개조’로 외쳐지게 하자. 그래야 당면 투쟁을 세상 바꾸는 투쟁으로 연결해 갈 수 있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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