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26일 한국노총은 전국 동시다발 고용노동부 규탄대회를 열었다. 노동부가 있는 세종시를 비롯해 각 지역에 위치한 고용노동청을 항의방문했다. “노동부 장관 퇴진, 양대 지침 폐기, 단협 시정명령 폐기”를 외쳤다. 그동안 한국노총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꾸준히 주장해 오던 내용들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규탄집회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바로 일반인이 국정에 개입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고 대통령이 사과한 다음날 치러진 행사였기 때문이다. 발언대에 선 연사들은 모두 격분했다. 어찌 대통령이 국정을 일반인에게 맞길 수 있느냐고.

노동도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단순한 연설문에서부터 기밀에 해당하는 국방문제까지 모두 최순실 등의 사전 검열을 받았다는 것 아닌가. 하물며 노동문제도 예외일 수 있겠는가. 실제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미르재단 초대 사무총장은 “청와대 비서관이 두께 30센티미터나 되는 ‘대통령 보고자료’를 매일 최씨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중에는 ‘노동’ 관련 자료도 있었다는 얘기다.

앞으로 최씨 일당이 노동문제에 관해 어떤 주문을 했는지는 차차 밝혀지리라. 아니 반드시 밝혀야 한다. 최근 4월까지도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했다는 재단 사무총장의 증언에다 이 정부의 최대 현안이 ‘노동’임을 감안한다면 논의됐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이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 확대 문제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넘어 최종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하다.

그들이 한 회의 방향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중추 대기업들이 무려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불과 수개월 만에 기부했다. 누구는 기업은 원치 않았고 사실상 정부 강요에 의한 기부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다른 차원으로 보자면 결과적으로 최씨 일당은 기부한 기업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해 온 게 된다. 성과평가라는 허울을 내세워 사용자에게 쉬운 해고라는 칼자루를 쥐어준 게 아닌가. 그 대신 800억원에 가까운 대가를 챙겼다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표현이 그르지 않아 보인다. 양 집단 사이에 암묵적 합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능력이 없다. 논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 자격 자체가 없다. 헌법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국정집행권한을 부여했을 뿐이다. 당연히 헌법과 법률을 따라야 한다. 단순한 의견을 구하는 것을 넘어 모든 국정에 관여하게 한 행위는 그 자체로 위헌이다.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는 헌신짝보다 못한 말이 되고 말았다. ‘민주공화국’ 체제가 무너졌다는 평가와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부 장관은 과연 무엇을 했던가. 만약 최씨 등이 노동 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정황을 알고도 그냥 넘어갔다면 직무유기다. 몰랐다면 무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헌법재판소에서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양대 지침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 위법이라는 의견을 발표한 지 오래다. 지난 봄 총선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심판까지 받지 않았던가. 국무위원으로서, 부처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잘 알고 있듯이 장관은 지금껏 수긍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청년고용과 일자리 확대를 위한 노동정책이라고 펴온 것들이 죄다 최씨 일당이 만든 것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래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오늘부터 노동부 장관은 없다”고 선언했다.

먼저 사과해야 한다. 민주적 정당성을 논할 수조차 없는 자들이 만든 정책은 폐기돼야 한다.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 확대도입을 포함한 모든 지침은 없애야 한다. 당연히 20대 국회 새누리당 1호 법률안인 노동 4법도 폐기해야 한다. 비리 재단을 위해 편성된 예산은 시민과 노동자들을 위해 써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국회가 해야 한다. 민주적 정당성을 잃은 정부가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국회도 반성이 먼저다. 4월 총선 이후 6개월 동안 뭘 했던가 돌아보자. 지난 겨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노동자들의 일반적이 평가다. 국회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목소리에 답해야 할 때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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