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한 달 전인 9월27일,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경찰의 부검 시도로 마음이 온통 심난한 날이었다. 서울지하철 구의역 참사 이후에도 코레일 선로를 유지·보수하던 하청노동자들이 숨졌고, 삼성에어컨을 수리하는 노동자가, 케이블을 연결하는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더 위험에 내몰렸다.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며 죽음도 모욕당하는 시대다. 그래서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해 왔던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이 자리가 너무 소중했다. 이 글은 그 비 내리는 날 서울YMCA 마루에서 열렸던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이야기마당’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안전하다는 환상 속에서 산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평온하기 그지없으나 우리 사회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청정하다고 여겨 왔던 반도체산업 환경조차도 제품을 위한 환경이었을 뿐이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그 환경 속에서 죽어 간 이들과 만나며 노동자의 죽음에 민감해지자, 전자산업이 얼마나 위험한 산업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인 홍명미씨도 "처음에는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가족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리고 다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이 세상이 돈을 위해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음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렇게 생명 상실의 고통을 깊이 숙고하고서야 우리는 이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위험사회에는 기업의 무차별적인 이윤추구가 숨어 있다. 유전자변형 농산물(GMO)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두레생협의 유경순씨는 “당장 위험하냐 아니냐의 논란을 넘어, GMO가 기업농이 제초제를 다량 살포하게 만들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4년 전 벌어진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후 많은 지역에서 ‘유해화학물질 관리와 지역사회 알 권리 조례’를 제정해 왔다. ‘알 권리’를 위해 노력해 온 <일과 건강>의 현재순 사무국장은 “비밀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기업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면 "기업의 영업비밀이라 안 된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보다 기업이윤이 더 중요한 사회의 단면이다. 한 해 2천4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이삼일 간격으로 조합원의 산재사망 소식을 듣는다는 민주노총 최명선씨는 노동자의 목숨이 기업의 이윤보다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가를 묻는다.

이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더한 고통을 당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대표인 강찬호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직접 가습기 살균제를 갈아 준 기억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 가족들의 자책감에 대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해 주는 이들이 없었다. 기업과 정부는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끝없이 모욕해 왔다. 그것은 이 사회를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자연스럽지 못한 누군가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그 죽음의 원인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변화를 원치 않으며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기업과 정부는 그 연대를 차단하고자 죽음을 모욕하고 비난해 왔다.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이야기마당’에 함께한 이들은 그 고통을 딛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들이다. 가족을 잃고 애통해했던 이들은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감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의 힘이 밥상 위에서, 침실 가습기에서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지 알게 된 이들은 그 기업이 또다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에 눈감을 수 없다. 그리고 기업과 결탁한 정부가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에 침묵할 수 없다. 그러기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반올림 활동가들이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었다. 아픈 이들이 또 다른 아픈 이들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버텨 왔다.

이날 우리는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각자의 눈물과 의지가 어떻게 증폭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노동자의 생명을 지킬 때 시민들의 생명도 지켜지며, 노동자가 안전할 때 지역사회도 안전해지며, 일터에서의 권리와 소비자로서의 권리 모두 기업의 이윤논리에 맞서는 이들의 연대를 통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재난과 참사로 인한 모든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비통에 공감해 갈 것이다. 그 죽음을 만들어 낸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며, ‘함께’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더 단단하게 연대할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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