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성과퇴출제 철회를 위한 철도파업이 26일로 30일째를 맞는다. 2013년 23일간의 KTX 민영화 반대 최장기 파업일수를 경신한 가운데 기억나는 전설적인 투사. 지난 19일은 2013년 파업일수와 같은 23일째 되는 날이었고, 서선원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 의장의 3주기 기일이기도 했다. 1988년과 94년 어용노조 시절 철도노동자들이 감행한 비공인파업의 중심이었던 서선원.

서선원은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80년 철도청에 입사했다. 88년 기관사들의 7·26 비공인파업(wild cat strike, unofficial strike)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파업의 결과로 '구속자 가족 후원회'가 구성되고, 전기협이 대중적인 구심점이 됐다. 당시 기관차 승무원들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이었던 열차 운전수당(기관사수당) 인상과 함께 전체 철도노동자들의 요구인 '근로기준법 준수와 8시간 노동제, 주휴일 보장, 호봉 승급 개선, 10등급 철폐, 해고자 복직'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하며 투쟁을 조직했다.

전기협은 자연발생적 투쟁이었던 88년 7·26 투쟁의 실패를 딛고 일상적으로 간부수련회, 실태조사, 수차례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부당전출자 원직복직 투쟁,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을 벌여 나가며 조직적인 활동을 강화했다.

기관사를 중심으로 한 노조민주화 세력의 대중적 성장과 함께 서선원은 93년 청량리기관차지부장에 당선됐다. 전기협 사무처장에 이어 의장을 맡게 된다. 94년 6월 전기협은 서울지하철노조·부산지하철노조와 함께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전지협) 공동파업 투쟁의 주축이 됐다.

전지협 공동파업은 공공부문 노조 민주화와 공공운수 총파업의 주요한 전범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전기협은 어용노조하에서 8시간 노동제 쟁취 등 노동조건 개선과 민주노조 건설의 초석이 된다. 당연한 절차처럼 서선원은 전지협 공동파업 투쟁으로 구속됐고 96년 홍성교도소에서 석방됐다. 하지만 2년을 복역하는 동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을 당했다. 첫 면회를 오셨던 어머니가 충격으로 당일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어머니 1주기에 세상을 등진 것이다.

본인도 출소 뒤 2년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고통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10년 해고생활을 어렵게 견뎌 냈다. 2001년 민주노조를 쟁취한 후 2004년 청량리 기관차로 복직했다. 그러나 이미 서선원의 건강은 정상적 업무가 어려운 상태였다. 복직 2개월 만에 꿈에도 그리던 철도 현장을 떠나야 했다. “철도가 민주노조로 바뀐 것만으로도 일생의 보람”이라는 퇴직 인사를 남겼다. 이후 건강회복에 집중하는 도중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본인도 자살을 시도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생업과 건강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2013년 9월 중순 건강악화로 입원 후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해 10월19일 유명을 달리했다. 생전에 필자와 몇 차례 만났을 때 그의 빛나면서도 따뜻했던 눈빛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반갑게 인사하고 힘차게 격려해 줬던 터라 그의 아픔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용서하시길…. 투쟁 과정에서 너무나 힘든 개인사로 고통받으며 민주노조와 공공철도를 열망했던 서선원의 헌신과 희생정신이 면면히 계승됐기에 철도노조의 오늘이 있다.

1946년 9월 철도노동자 4만명이 선봉에 선 가운데 30만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조합원들이 총파업에 들어갔다. 철도노조는 전평의 중심이었다. 오랜 어용노조 시절 88년과 94년 비공인파업의 주역이었던 전기협 의장 서선원과 노동자들. 민주노조를 열망하며 피와 땀과 눈물로 건설된 민주 철도노조. 2001년 노조 민주화를 원동력으로 2002년 2월25일 역사적인 철도·발전·가스 3노조 동맹파업을 감행하고 결국 현재까지 민영화 저지에 성공한 것이다. 직권중재 제도하에서 파업은 돌입과 동시에 불법이었지만 공공철도 사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승리를 조직해 낸 저력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현재 철도노조는 박근혜 정권의 성과퇴출제에 맞선 공공총파업의 선봉에서 한 달째 합법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단하다. 철도노동자들. 현행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된 뒤 합법파업의 길이 열린 공공부문의 파업형태는 이른바 '필공 파업'이다. 무기한 부분파업(필수유지업무자를 제외한 비필수유지업무자 파업) 전술이 구사된다. 필자는 언젠가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이 제한적 제도와 전술적 한계를 돌파해 주기를 기대한다. 선배 노동자들이 불법의 굴레를 쓰고도 투쟁했던 노동자 정신과 투쟁의 역사를 올곧게 계승해 법과 제도의 한계를 반드시 극복하리라 믿는다.

철도노조가 공공총파업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때, 자랑스럽게 철도노동자 서선원을 기록한다. 개인의 삶은 신산했고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민주노조 건설에 성공하며 그 보람으로 삶을 마감했던 잊지 못할 활동가. 노동자 권리의 암흑기였던 88년 기관사 파업과 94년 전지협 공동파업의 중심, 민주노조 건설과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권 쟁취의 중심, 전설적인 전기협 의장 서선원.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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