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미국 대통령 선거가 두 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미국 민주주의는 다소 그럴듯하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미국 대선에서 설사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더라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명성은 빛을 발하지 못할 듯하다. 첫째는 선거 과정이 역사상 가장 추하다고 할 정도로 성추문 폭로를 비롯한 온갖 상호비방·인신공격·막말·불복 예고 등으로 얼룩진 막장극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동안 실제로는 어떠하든 공식 담론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 아래 금기로 돼 있었던 것들, 예컨대 히스패닉·무슬림·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와 차별이 공공연히 입에 올려지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저급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런 추악한 선거전 속에서 미국 대선을 둘러싸고 있는 심각한 정책대립과 정치지형의 기묘한 변화에는 관심이 기울여지지 못하고 있다. 민주·공화 양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손을 잡고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는 자기 당의 지도급 인사들로부터도 배척받고 있다. 그 이유가 트럼프의 저질적 발언과 행태에서 비롯되고 있을까? 아니면 트럼프의 정치노선에서 비롯되고 있을까? 두 측면이 얽혀 있는 탓에 무 자르듯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그의 인격적 저질성이 아니라 그의 정치노선 문제가 지배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런 추정의 근거는 이렇다. 힐러리의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르윈스키양을 “부적절하게” 농락했지만, 민주당 지도자들은 그의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화당 지도자들은 지금 음담패설 대화를 한 트럼프에게서 대거 등을 돌리고 있다. 현재의 공화당 지도자들이 과거의 민주당 지도자들보다 훨씬 도덕적이어서 그럴까?

이번 미국 대선은 이변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미국 정치는 보수 양당제에 의해 이끌어져 왔는데, 그것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두 기성 정당은 초당적으로 하나가 되고 있고, 미국 100대 언론이 모두 초당적으로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다. 거기에 트럼프 후보가 혼자서 맞선 형국이다. 무엇이 이런 정치지형의 이변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언론에서는 별다른 분석이 없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미국 거대언론들의 전달벨트 수준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10월1일자에 “왜 그들은 틀렸는가”라는 제목의 사설과 “세계화를 방어하는 특별 보고서”라는 제목의 특집을 실었다.

결론만 말하면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트럼프 후보 등장이나 모두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반작용이고 반대라는 것, 그리고 세계화가 무역 자유화와 자본이동의 자유화 및 이민 확대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국내 제조업과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었으며, 이들이 지금 반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같은 보호무역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세계화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손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재훈련하고, 초국적 기업에게 과세를 강화하고, 휘발성 자본이동을 억제하는 등의 보완책을 강구하는 쪽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요컨대 세계화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관계하에서 워렌 버핏 이하 거의 모든 초국적 금융·산업자본가들이 한 덩어리가 돼 세계화를 지키기 위해 단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173년 전 영국의 곡물법 폐지운동까지 들먹이면서 자유무역주의의 이로움을 강변하고 있다. 그들은 나아가 지금 경제의 세계화 질서와 더불어 그 쌍생아인 미국의 유일패권 질서를 지키고자 총 단결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것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의 지향점은 보호무역주의와 다극패권 질서다.

실은, 자유무역주의는 역사적으로 패권적 자본 분파의 이데올로기다. 19세기 당시에도 이미 자유무역주의가 기존의 생산력 격차를 고착화시킴으로써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만 이롭게 하는 정책임이 잘 알려졌다. 그래서 미국조차도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취했다. 뿐만 아니라 곡물법을 폐지하면 임금을 두 배 오르게 할 테니 자기들을 지지해 달라고 사탕발림을 했던 자유무역주의자들, 즉 자본가들은 임금을 오르게 하지도 노동시간을 단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주들의 당인 보수당이 자본가에 대한 보복으로 노동시간 단축에 찬성했다. 마르크스는 1848년 1월 이 문제에 대해 한 대중집회에서 "자유무역은 자본의 자유에 불과하고, 자유무역주의·보호무역주의 두 가지 모두 노동자에게는 마찬가지로 착취적·적대적이며, 보호무역주의가 보수적인 반면 자유무역주의는 파괴적이어서 사회혁명을 촉진한다"고 폭로했다.

역사가 그러했고 이치가 그러하다면 미국의 노동자들은 트럼프가 싫어서 클린턴을 찍어서도 안 되고, 클린턴이 싫어서 트럼프를 찍어서도 안 될 것이다. 둘 다 자본의 인격화이고 둘 다 노동에 대립한다. 민주당 후보 오바마는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악법인 태프트 하틀리법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그 공약을 지키고자 노력한 흔적이 없다.

이참에 미국 노동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계급이 독자의 이념과 정책으로 독자의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전환기인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해야 할 때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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