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 4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2차 총파업 총력투쟁에서 발언하는 김영훈 위원장.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민과 헌법을 믿고 출두한다."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를 내걸고 철도노조 최장기 파업을 이끌고 있는 김영훈(48·사진) 위원장이 파업 28일차인 24일 경찰에 자진출두한다. 정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주장하고 있는 불법파업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미다. 코레일은 김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간부 19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현재 3차 소환장까지 발부된 상태다. 3차 출석요구서 기한은 27일까지다.

김 위원장은 출석 하루 전날인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 인터뷰를 통해 경찰 소환조사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 노조는 "떳떳하기 때문에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쟁의행위 기간 중 지도부의 출두 여부를 고려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경찰서가 두 차례 소환장을 보냈을 때 "정당한 쟁의행위 기간 중이기 때문에 쟁의행위가 끝나고 나면 성실하게 경찰 조사에 임하겠다"는 사유서를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파업 25일차였던 지난 21일 홍순만 코레일 사장의 기자회견을 본 김 위원장은 마음을 바꿨다. 홍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불법파업 주동자를 시작으로 법과 원칙에 따른 본격적인 징계절차에 착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군 인력 확보과 외주화도 언급했다.

이를 지켜본 김 위원장은 조합원 간담회차 경북 영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소환조사에 응하기로 결심했다. 노조의 파업이 더 이상 불법논란, 시빗거리로 왜곡되는 것을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는 "파업 기간에 태산과 같이 침착하고 여유롭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며 "제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이 싸움의 결정적 전환점을 만드는 게 위원장으로서의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혹여 정치검찰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합원 곁을 잠시 떠날 수도 있지만 철도노조는 위원장의 힘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란 게 이미 확인됐다"며 "불의한 권력이 나를 가둔다면 파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코레일에는 대화를 촉구했다. 그는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한 잘못된 전제부터 허물고 지금이라도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부산지하철노조 재파업 응원차 부산에 내려갔다 이날 새벽 기차로 서울에 올라온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적잖이 배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최장기 파업, 흔들림 없는 조합원들


- 역대 최장기 파업이다. 이렇게 오래갈 줄 예상했나.

"싸움이 쉽지 않다는 건 조합원들도 알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안보위기와 경제위기를 일종의 보수결집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자신의 무능과 부패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연명하는 정권이다. 조합원들도 '파업을 한 달 넘게 한다고 해서 쉽게 생각을 바꿀 정부는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길게 올 줄은 몰랐다. 언론에서 매일 '파업 며칠째'라고 보도하는데, 파업 일수 갱신이 자랑도 아니고 훈장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가 소중할 뿐이다."


- 2013년 겨울 수서발 KTX 민영화 반대투쟁 때와 비교하면 정부·사측의 탄압 양상은 비슷한데 조합원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최근 3차 총력 결의대회에 모인 조합원들을 보면서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이 떠올랐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게 태산같이 행동하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께서 첫 번째 옥포해전에 나가며 불안해하는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감히 비교할 건 아니지만 수서발 KTX 민영화 반대 투쟁 때도 조합원들이 잘 싸웠지만 이번 파업에선 조합원들이 태산과 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업 노동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봉사활동부터 대시민 선전전과 언론 기고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회사의 불법 공세나 가족에 대한 회유·협박에 미동도 하지 않고 평온함 속에서 여유와 내공을 뿜어내고 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이날 현재 파업 조합원의 업무복귀율은 5.4%에 불과하다. 파업 주력부대인 열차·승무원들의 복귀율은 1%를 밑돈다. 2013년 12월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을 전후해 전체 파업대오가 급속히 흔들였던 직전 파업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하던 중 경찰 소환조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철도노조


홍순만 사장 기자회견 보고 자진출두 결심


-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고 있는데 경찰 소환조사에 응할 이유가 있나. 자진출두를 결심한 배경은.

"지난 21일 홍순만 사장의 기자회견이 결정적이었다. 불법파업으로 규정한 것도 모자라 조합원들 없이도 철도를 운영하겠다는 위험천만한 말을 했다. 파업을 계기로 딴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외주화에 아웃소싱, 순환전보, 군 인력 확보까지 그간 낙하산 사장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봤다.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게 우리 약점인 줄 알고 집집마다 급여명세서를 보냈다. 게다가 파업 동료 간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이 투쟁의 전환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자진출두를 결심했다. 간담회에서도 조합원들께 '지금이 위원장이 움직일 시간이며 비겁하게 숨지 않겠다'고 말했다."


- 경찰 출두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우병우·최순실 지키기에 혈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제 발로 찾아온 걸 가만히 놔두겠냐고 우려하는 동지들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태산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상 지금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조합원들의 결백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저들은 내가 소환에 불응하기를 원할 것이다. 소환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이 높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마치 철도파업이 불법으로 결정 난 것처럼 매도하기 안성맞춤이다. 지도부가 발이 묶이면 사측은 마음대로 현장을 유린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들 생각이 결코 없다. 오히려 위원장 스스로 움직여 불법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국민과 대한민국헌법을 믿고 출두한다. 정치검찰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합원 곁을 잠시 떠날 수 있지만 철도노조는 위원장 힘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란 게 이미 확인됐다. 불의한 권력이 나를 가둔다면 파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당한 기본권 행사에 불법 낙인, 출구 닫아 버린 정부"


- 정부·코레일은 성과연봉제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철도파업이 장기화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합법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업 기간 내내 저들에게 묻고 있는 것은 성과연봉제라고 하는 정부 지침이 과연 헌법 33조(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위에 존재하냐는 것인가다. 국민의 기본권인 파업권이 회사 사규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저들은 '그렇다'고 한다.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불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정부 스스로 출구를 차단해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 때 우리를 '본인들의 이익에만 몰두해 일터를 버리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로 규정했다. 파업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인식이 이 정도다. 물론 대통령 스스로 이 파업이 '권리분쟁'이 아닌 '이익분쟁(합법파업)'이란 걸 확인시켜 주긴 했다(웃음)."


- 노조는 국회 차원의 중재를 요구하고 있다. 여야 모두 2013년에 비해 적극적인 중재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2013년 파업 때는 새누리당에 김무성 의원 등 상대적으로 청와대로부터 자율성을 가지려던 세력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여당이 철저히 청와대에 종속돼 있다는 방증이다. 야 3당은 사회적 대화 합의기구에서 성과연봉제 문제를 다루자고 한다. 새누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 움직임이 미약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국회 차원의 중재를 존중하지만 거기에만 기댈 생각은 없다."



공공성 지키는 파업에 "불편해도 괜찮다"고 화답한 시민들


- 홍순만 사장과 일부 언론은 왜 노사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냐고 비판했다.

"대체 그들이 말하는 민생이 뭔지 궁금하다. 우리 삶과 정치가 무관한 게 있기나 한가. 공공부문 성과주의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텐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현안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일각에서는 철도노조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파업을 한다고 비판한다. 실제 자유주의·보수주의 정부를 불문하고 소위 공공부문 개혁을 내세우지 않았던 정부가 없었다. 공공부문은 으레 비효율적이고 방만하다는 전제 아래 국민은 공공부문을 보편적 복지로 인식하지 못했고, 권력자들은 공공부문을 때리면 그것이 지지율로 이어진다는 착시 때문에 역대 정부 모두 공공부문 개혁을 주장해 왔다. 우리는 거기에 대응해 투쟁했을 뿐이다."


- 2013년 파업이 '안녕'이라는 사회적 화두를 담으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이번에는 '불편해도 괜찮다'는 시민들의 자발적 대자보가 화제다.

"공공기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공공부문의 성과주의 도입이 왜 위험한지에 대해 시민들의 거대한 인식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게 '불편해도 괜찮다'는 말에 함축돼 있다고 본다.

2013년 파업을 접고 현장으로 돌아가면서 조합원들은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파업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동자들의 손을 시민들이 잡아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파업은 강한 국가와 탐욕스러운 시장에 포위되고 고립돼 있던 조직노동자들과 시민들의 동맹·연대라고 할 수 있다."


- 정부와 코레일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부가 합법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모든 교섭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리고 강경대응을 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민 불편이 가중되고 막무가내 대체인력 투입으로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부 스스로 이 전제(불법파업)를 허물지 않는다면 파업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모든 전제를 허물어야 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정상적인 단체교섭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조합원들을 범죄자나 징계자로 취급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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