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화물연대 파업이 끝났다. 역대 최장 파업이었다. 파업은 끝났지만 화물연대가 요구했던 여러 쟁점은 사실 그대로 남아 있다. 먹통 정부의 강경책에 화물연대가 다소 아쉽게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국민이 화물운송시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다. 육상 화물운송산업은 한국 재벌경제의 모순이 가장 추악한 형태로 응축된 곳이다. 재벌체제 개혁의 가늠자로 삼아야 할 표본이다. 우리나라 미래가 재벌체제 개혁에 달린 만큼 화물연대 요구를 곱씹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나라 육상 화물운송시장은 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중적’ 다단계 하청구조로 돼 있다. 화물연대의 여러 요구들은 이를 개혁해 달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화물차는 이른바 지입차로 현대글로비스·CJ대한통운 같은 운송회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화물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소유한 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가 부품이나 완성차를 운반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에 화물을 맡기면, 현대글로비스가 규모가 작은 ○○운송업체들에게 운반을 아웃소싱하고, 이 소규모 운송업체들이 또 △△알선업체들을 통해 화물차를 모집하는 식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화물차를 소유한 화물노동자가 부품과 완성차를 운송한다. 짧게는 2단계, 길게는 5단계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최초 화주가 지불한 운송비는 적게는 20%, 많게는 30~40%까지 중간에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진다.

물량을 떠넘기는 다단계 하도급이야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육상 화물운송시장이 황당한 것은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화물차 번호판까지도 다단계 하청구조로 돼 있다는 것이다. 화물노동자가 화물차를 소유하지만 이상하게도 운송업을 할 수 있는 노란색 번호판은 대부분 운송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탓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운송업체가 정부로부터 50개의 번호판을 허가받아 소유했는데, 자신이 직접 계약할 화물차 20대를 제외하면 30개의 번호판이 남아 이를 B운송업체에 돈을 받고 임대한다. 그리고 B운송업체는 이 번호판 30개를 중간 번호판 매매업자에게 임대하고, 또 중간 번호판 매매업자가 화물노동자에게 번호판을 다시 임대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다단계로 번호판이 임대 또는 매매되며, 결국 화물노동자는 운송을 위해 이 번호판을 수천만원을 주고 임대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화물차의 노란색 번호판은 상당수가 여러 방식으로 매매된 번호판들이다.

요약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물량도 다단계, 운송허가증(영업용번호판)도 다단계로 매매되며 이 모든 비용을 시장의 바닥에 있는 화물노동자가 책임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화물에 손끝 하나 대지 않는 중간업자들이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간다. 화물차를 화물기사가 스스로 구매해야 하는 지입제도도 세계적으로 흔치 않지만, 운송허가증까지 이렇게 다단계로 매매되는 시장은 세계에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모든 다단계의 꼭대기에는 당연하게도 현대글로비스·CJ대한통운 같은 재벌운송사들이 자리한다.

화물연대가 내세운 파업 요구들은 지입제를 폐지하라는 것이고, 지입제를 당장 폐지할 수 없으면 다단계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라는 것이다.

화물연대가 10년 넘게 요구하고 있는 표준운임제는 실제 화물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의 수입을 기준으로 화물운임 체계를 법적으로 정하라는 것이고(최저임금제와 같이), 운송사가 일방적으로 화물노동자에게서 번호판을 빼앗지 못하도록 제도적 보호를 강화해 달라는 것이며(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처럼), 다단계 중간수수료 제도를 유지한 채 화물노동자 간 경쟁만 과열시키는 수급조절 규제완화 정책을 폐지하라는 것이다(점포의 입점 거리 제한 제도같이).

당연하게도 이중적 다단계 구조는 재벌운송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심지어 경기침체로 화물운송량이 줄어도 재벌운송사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화물운송에 필요한 고정비용을 모두 화물노동자가 짊어지기 때문이다. 재벌운송사에는 고정적 감가상각비와 유지비가 들어가는 화물차가 없고, 고정 임대료가 필요한 차고지도 없으며, 고정적 임금이 지급되는 운전기사도 없다. 모든 것을 화물노동자가 책임진다. 물동량이 줄면 공급과잉 상태인 운송시장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가 심해져 운임이 더 빠르게 삭감되고, 결과적으로 재벌운송사가 지불해야 할 운임이 매출보다 더 빠르게 감소한다. 따라서 이익이 느는 정말 기적 같은 일도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해보다 올해 경기가 더 어려운 상황임에도 글로비스·CJ대한통운·한진 같은 재벌운송사들은 올해 상반기 이익이 지난해보다 16~22% 증가했다. 반대로 화물노동자 순수입은 지난해에 비해 반토막 났다. 필자가 실제 화물노동자의 수입지출 영수증을 분석해 본 결과 파업 직전 8월 순수입은 70만원에 불과했다. 바로 이런 게 그야말로 재벌경제가 만들어 내는 디스토피아 중 하나일 것이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경제민주화, 재벌체제 개혁이다. 화물운송시장은 재벌경제의 막장이다.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은 화물시장 개혁을 지지해 줘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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