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14일과 15일 양일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Social Asia Forum"에 참가했다. 한·중·일·대만 4개국에서 온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동아시아가 직면한 고령화·성(차별)·빈곤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노동조합의 역할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였다. 각국을 대표하는 100여명의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우리나라는 이승길 아주대 교수를 대표로 10명이 참석했다. 참고로 SAF는 올해로 20회를 맞이했다. 회원 4개국은 매년 개최국을 이동하며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노동사회 문제를 주제로 정하고 해결방안을 공유해 왔다. 지정학적 위치는 물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각 나라의 발전과 실패의 경험이 서로에게 큰 힘이 돼 왔다.

이번 포럼의 주제인 고령화·성(차별)·빈곤 중에도 특히 고령화가 주의 깊게 다뤄졌다. 처한 입장을 막론하고 급격한 고령화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본은 무려 4명 중 1명에 이르는 세계 최고 고령국가다. 중국은 어떤가. 2015년 11월 기준 14억명에 육박하는 인구 중 65세 이상이 무려 10%를 넘기고 있다. 세계 최저를 경신하고 있는 우리나라 출산율은 고령화의 이면이 아닌가.

고령화가 만들어 내는 노동문제는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고령화에 대처하는 각국의 노력에는 본받을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일본 전기연합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돌봄 휴직제도는 인상적이었다. 먼저 가족 중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가 있을 경우 “조합원 중 약 40%가 돌봄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는 자체조사를 소개했다.

이처럼 조합원들이 처한 어려움을 돕기 위해 노동조합에서는 돌봄과 일의 양립을 위해 돌봄지원종합프로그램을 구축했다. 육아·개호휴업법에서 정한 내용을 기초로 하지만 휴직기간 연장, 근로시간단축, 심야근로 제한, 돌봄 휴가 확대 등에 힘쓰고 있었다.

일본의 고령화에 대한 정부와 노동조합의 대응은 참가국들의 부러움을 살 만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에 관한 법률에서 가족돌봄 휴직제도를 정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위 제도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없다. 육아휴직조차 마음 놓고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노동환경에서 부모님 병간호를 위해 휴가를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공통점 외에도 중국은 2008년 1월1일 시행된 ‘노동계약법’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중국 노동시장에서는 경제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개별 노동권 보호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가 점점 세를 얻고 있는 듯했다. 이외에도 이른바 ‘신창타이’(새로운 상태)를 맞이해 정책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전면적인 두 자녀 정책 실시에 따른 여성노동자의 권리보장에 힘쓰고 있었다.

대만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통계가 있었다. 기업별·산업별노조 이외에 직업노조가 조직되고 있었다. 전체 조합원 중 무려 80%가 넘었다. 직업노조는 관련 직업 기능의 노동자를 결합한 노동조합이다. 여기에 속한 조합원에게 노동보험과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사회보험 가입 기회를 얻기 위해 꾸준히 조합원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은 최근 여성의 노동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의 부수 효과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정책적 의지의 결과로 보였다. 예전에 비해 어려운 경제사정이지만, 청년들의 일자리가 크게 늘고 최저임금 수준 또한 큰 폭으로 인상되는 모습에서 그들의 노동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노사정 대화마저 실종된 우리나라의 현실은 크게 자랑할 게 없었다. 단적인 예로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 노동자의 빈곤 문제는 우리가 가장 열악했다. 토론 중에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 주제발표 시간, 일본ILO협회 간부는 “한국의 노동조합은 청년·여성·고령노동자 등이 처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무슨 일을 해 왔느냐”고 물었다. “사회적 약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한국노총도 힘쓰고 있다. 현재는 성과를 중심으로 하는 현정부의 일방적인 노동정책을 막기 위해 투쟁 중에 있다”고 간단히 답했을 뿐이다. 뭔가 개운치 않았다. 돌아오는 날까지 고민이었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문제 해결을 위한 진실된 ‘의지’와 ‘노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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