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화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6.9.28 선고 2015나2043064


1. 사건의 개요

가.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노동조합)는 2012년 4월23일 전면파업에 들어갔고, 리테일 영업직과 관리직으로 근무하던 원고들도 파업에 참가했다.

나. 피고 회사는 파업 중이던 2013년 4월께 리테일 영업직 직원의 임금체계를 고정급에서 성과연봉제(고정급을 월 200만원으로 낮추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형태)로 변경했다.

다. 피고와 노동조합은 2013년 11월28일 파업 종료에 관한 노사합의와 임금협약을 체결하면서 파업 이전에 관리직 또는 정규직 영업직으로 근무하던 근로자가 리테일 영업직의 성과연봉제를 적용받는 경우 일정한 전환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라. 노동조합은 2013년 12월6일 파업을 종료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피고는 2013년 12월9일 파업에서 복귀한 조합원들에 대해 교육훈련을 했고, 같은달 16일과 19일 조합원 30명을 기업개선팀으로, 17명을 리테일 영업직으로, 3명을 채권영업팀으로 각 전보했다.

마. 피고 회사는 다시 2014년 3월28일 법인자산관리팀을 신설하고, 며칠 뒤인 4월1일 앞서 전보발령에 따라 기업개선팀으로 발령된 30명 중 원고들을 비롯한 14명을 법인자산관리팀으로 전보했다. 법인자산관리팀 보수체계는 리테일 영업직과 동일하게 고정급 200만원에 성과급을 받는 형태였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들이 리테일 영업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환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바. 원고들은 전보발령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전보발령으로 인한 손해(관리직의 경우에는 고정급에서 성과연봉제로 변동되면서 삭감된 임금액, 리테일 영업직의 경우에는 전환보상금)도 청구했고,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했다(서울서부지법 2015.7.2 선고 2014가합5364 판결).

사. 피고 회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서울고법에서 심리가 이뤄졌다.

2. 2심 법원의 판단

2심 법원은 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전보발령이 무효이고, 피고 회사는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서울고법 2016.9.28 선고 2015나2043064 판결).

가. 이 사건 전보발령의 업무상 필요성과 그에 따른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교량하면, 이 사건 전보발령은 업무상 필요성보다 그에 따른 원고들의 생활상의 불이익이 훨씬 중대하다고 보인다. 여기에 피고가 이 사건 전보발령을 하면서 노동조합이나 원고들과의 협의 등 전보발령 과정에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일절 거치지 않은 점을 더해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 사건 전보발령은 인사권의 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

나. 이 사건 전보발령은 무효이므로 피고 회사는 ① 원래 리테일 영업직으로 근무했던 원고들에게는 노사합의와 임금협약에서 정한 전환보상금을 ② 관리직으로 근무했던 원고들에게는 관리직으로 근무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차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평석

가. 전보발령의 정당성 판단기준

전직처분 등이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는 당해 전직처분 등의 업무상 필요성과 전직에 따른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교량하고, 노동조합 또는 당사자 본인과의 협의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대법원 2009.4.23 선고 2007두20157 판결 등 참조).

나. 대상사건의 경우

(1) 업무상 필요성

피고는 파업종료 후 기관투자자나 상장회사가 아닌 ‘일반법인’만을 상대로 새로이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법인자산관리팀을 신설하고, 원고들을 사전 협의도 없이 법인자산관리팀으로 전보했다. 법인자산관리직을 신설하기 위한 회사 차원의 준비도 없이 파업 참여 조합원들을 일괄적으로 전보한 것이다. 원고들은 종래 관리직이거나 리테일 영업직으로 개인 고객을 상대로 영업활동을 했을 뿐, 법인영업은 문외한이었다. 회사 차원의 준비도, 전보 대상자들에 대한 교육훈련도 없었다. 피고 회사가 전보 당시 원고들로 하여금 법인자산관리직을 수행하게 할 업무상 필요가 ‘진정’으로 있었다면 원고들에 대해 적합한 교육과 시설, 영업기반을 제공했겠지만 그러한 조치는 없었다. 대신 피고는 원고들을 법인자산관리직으로 발령한 직후인 2014년 4월11일부터 ‘유선통화, 법인 방문’ 등의 영업행위와 그에 상세한 보고를 독촉했을 뿐이고, 지난해 1월26일에는 법인자산관리직 모두를 ‘저성과자 영업활성화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해 압박했을 뿐이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 이 사건 전보발령에 업무상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증권회사에서 관리직·리테일 영업직 업무와 법인영업 업무는 분명히 구분된다는 점, 이른바 ‘저성과자 영업활성화 프로그램’을 실시해 근로자를 압박하고 업무실적을 내라고 독촉하더라도 업무상 필요와는 무관하다는 점, 따라서 법인영업에 생소한 관리직·리테일 영업직을 아무런 준비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법인자산관리직으로 전보하는 것은 무효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 생활상 불이익

이 사건 전보발령으로 관리직 내지 리테일 영업직으로 근무하던 원고들의 전문성과 경험은 고스란히 사장됐다. 전혀 생소한 법인영업에서 성과를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원고들 대부분이 피고 회사에 의해 ‘저성과자’로 지정돼 혹독한 압박을 받았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피고 회사의 조치와 그로 인한 원고들의 임금 및 업무환경의 변화가 중대한 불이익이라고 판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의절차

전보발령 과정에서 노동조합 내지 전보대상자와 사전에 성실한 협의를 했는지도 전보발령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 회사는 원고들을 전혀 생소한, 신설된 부서로 전보하면서도 이러한 협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피고 회사가 협의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도 주요한 무효사유 중 하나로 봤다.

4. 결론

인사배치, 전보·전직발령, 교육훈련이 마치 사용자의 고유 권한인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정직·전직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 마음대로 전직·전보, 인사배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비로소 적법인 인사권으로 볼 수 있다. 대상판결은 전보발령이 사용자의 무소불위의 권한이 아니라는 점, 근로기준법에 따른 전보발령의 정당성 판단기준에 관한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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