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10년이 넘도록 싸워 온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건립을 소망하는 비정규 노동자. 한뎃잠 자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과 투쟁으로 병든 몸 살림집을 동시에 짓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오석순.

오석순은 충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6년간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온 동네에 갚아야 할 빚을 유산으로 남기고. 어머니는 담배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중노동을 해서 5남매를 키워야 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미술반 선생님이 미대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지만 가난이 소녀의 꿈을 가로막았다. 인천의 새한미디어와 삼양라면에서 노동자로 살며 미대 진학의 꿈을 꿨다. 하루 12시간 맞교대를 했고 때로는 야간만 하기도 하며 미술학원을 다녔다. 어느 날 학원 다니는 길에 전신주에 붙은 ‘무료 풍물 교습’ 전단을 보고 풍물교실을 다니게 됐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회사에서 풍물교실에 다니는 것을 막았고 결국 이를 이유로 권고사직시켰다. 빨갱이라는 덧칠과 함께. 뒤이어 취업한 동양트랜스에서는 삼양라면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애라는 사유로 해고됐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1991년 입사한 대성전기에서 가급적이면 조용히 있으려고 했지만 노조활동을 하다가 또다시 해고됐다.

20대에 이미 두 번의 해고를 경험한 오석순은 보육교사 과정을 수료하고 어린이집 원장으로 변신했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엄마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며 지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기만 했지 영업은 젬병이어서 적자가 누적됐다. 결국 2005년 2월 새 일자리를 찾았는데, 운명적인 기륭전자였다.

몇 년 전 여기까지 인생사를 듣는 데에도 긴 시간이 소요됐다. 길거리에서 집회를 하고 쓰러진 어느 노동자를 병원에서 지키던 날 우연히 서로의 속내를 드러낸 시간이었다. "위원장님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 이 생고생을 하세요?"로 시작해 "오석순 동지는 기륭전자 이전에 뭐했어요?"라고 되물으며 이어진 긴 이야기였다.

"위원장님도 공장에서 해고된 적이 있었네요."

"그러면 그렇지 기륭 이전에 전력이 화려하구만요."

추임새와 웃음이 살갑게 이어졌다.

오석순이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2005년 7월5일 열악한 노동조건의 기륭전자에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그해 8월3일 노동부(현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결정이 내려졌지만 긴 싸움의 서막일 뿐이었다. 8월24일 시작된 파업투쟁은 1천895일이 지난 2010년 11월1일 끝났다.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은 국회에서 합의문 조인식을 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3년 12월30일 최동열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야반도주했다. 다시 이어진 농성투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복직’이라는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고, 검·경은 이 악덕 자본을 비호했다.

기륭투쟁 10년을 넘기는 동안 당시 김소연 분회장은 94일 단식을 했다. 오석순도 2005년 30일, 2008년 47일, 2010년 20일 등 세 번의 단식을 했다. 심신을 만신창이로 만들고도 남을 장기투쟁 과정에서 몸이 썩 좋지 않았던 그는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급기야 올해 3월 초 수술을 받았다. 가족들과 노동자들의 충격이 컸다.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짓기에 바쁜 오석순의 재기를 위해 남편과 가족들이 제주에 아담한 거처를 짓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오석순.

몇 해 전 기륭노동자들과 제주시의 어느 동네를 지나가면서 필자가 소개를 했다.

“이 동네는 원래 제가 소유한 곳인데 너무 바쁜 관계로 자주 오지는 못합니다. 이 동네가 바로 이호동이에요.”

박장대소가 터졌고 오석순은 “저도 오래전부터 제주에서 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혹시 제주에서 살게 되거든 제 동네인 이호동에 자리 잡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오석순이 제주도민이 된다. 여전히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장기투쟁 노동자들은 누구나 마음의 병이 있어요. 그런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해요. 한뎃잠 자는 그들에게 맘 편히 몸 누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지난 30년의 노동운동 과정에서 몸은 병들고 마음은 상처투성이다. 자본만 천국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보냈던 시간을 ‘행복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오석순. 30년 운동의 이러한 낙관이 오석순의 눈과 가슴을 깊게 만들었나 보다.

제주에 집을 지으면 다락방을 만들어 ‘꿀잠 2호점’으로 비정규 노동자들한테 개방하겠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 오랜 세월 투쟁으로 지치고 병든 몸을 잘 회복해 최동열 회장에게 사회적 합의 불이행에 따른 엄중한 법적·사회적 책임을 묻길 빈다. 변함없는 당당함과 강건함을 위해 기원한다. 힘내라! 기륭전자분회 오뚝이 오석순!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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