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를 거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다면 종전대로 노조 동의를 받는 형식을 유지하되, 과반수노조가 없으면 투표로 찬반을 묻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이 같은 내용의 근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을 포함해 22명이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조직 노동자 보호효과 기대=취업규칙은 단체협약과 달리 사용자에게 작성권과 변경권이 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근로자참여제도가 마련돼 있다. 현행 근기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작성·변경할 때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노조, 과반수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노동자 과반수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취업규칙의 내용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될 때에는 의견을 청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동의’를 받도록 했다.

취업규칙 작성·변경에 대한 근로자참여제도는 강행규정이다. 때문에 이사회나 경영협의회 같은 다른 제도로 대체할 수 없다. 최근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용득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으로 63개 공공기관·금융기관이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노동부에 진정이나 고소를 제기했다. 이 중 4건에 대해서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해당 기관들이 겪는 갈등의 핵심은 ‘이사회를 통한 성과연봉제 의결’의 합법성 여부다. 법정으로 다툼이 번지면 근기법 강행규정 위반으로 해석될 여지가 상당하다. 기관들은 불법행위라는 위험부담을 안고도 이사회 의결을 강행해 심각한 노사갈등을 불렀다. 성과연봉제를 맹신하는 정부의 압박에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그나마 이들 기관 대부분은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다. 과반수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사용자가 개별 노동자에게 취업규칙 변경동의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는 등 편법이 횡행했다. 그럼에도 개별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부당함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법적 대응 같은 적극적 구제방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한계 때문에 개별 노동자가 소송주체로 참여한 판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재판장 마용주)가 학습지업체 ㈜대교 소속 노동자 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관련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적이 있는데, 이 역시 가뭄에 콩 나듯 나온 희소한 판결이다. 당시 재판부는 대교가 직급에 따라 최대 40~50%씩 임금이 삭감되도록 설계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직원 1~5명으로 구성된 ‘팀’ 단위로 취업규칙 변경동의서를 받은 것에 대해 “근로자들에게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노동자 보호, 근기법 입법취지에 부합"=이용득 의원이 이날 발의한 근기법 개정안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조직 노동자의 권익보호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노조는 있는데 과반수노조가 아닌 경우나 복수노조 사업장인데 과반수노조가 없는 경우 해당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도 담았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 노조조직률이 10%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노동자 10명 중 9명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해도 대응할 수단이 없다”며 “이런 노동자들이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다면 직장내 민주주의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의 법안에 대한 노동법 전문가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박성우 공인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장)는 “현행 근기법에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동의절차에 대한 세세한 조문이 없고, 그로 인해 과반수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현장에서 사업자가 개별 노동자에게 회람 방식으로 동의를 강요해도 이를 제재하기 어려웠다”며 “불분명한 법조문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입법방향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 노무사는 “현행법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동의절차에서 사용자 개입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투표방식 도입 자체를 반대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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