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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의 '반올림'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정병욱 변호사
(법무법인 송경)

요즘 가야금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매일노동뉴스 칼럼에 뜬금없이 ‘가야금?’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가야금이라는 게 원래 줄이 12줄밖에 없기 때문에(물론 25현 가야금도 있긴 하지만 ‘전통 가야금’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세상의 소리를 그나마 풍부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오른손으로 음을 짚으면서 왼손으로 현을 살짝 누르거나 지긋이 누르거나 아니면 떼어내면서 12음 이외의 소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가야금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반올림음이나 반내림음, 또는 반의반 올림음이나 반의반 내림음 소리를 듣게 되고, 만들어 낸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거나 떼어 놓는 데 따라 무한한 음의 변화를 느끼다 보면 정말 우리 조상님들이 그저 소만 기른 건 아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서두가 길었다. 가야금을 할 때면 왼손의 무한한 반올림음 내지 반내림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반도체와 LCD에서 일하다 각종 암과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 현재도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분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삼성과 힘들게 싸우고 있는 '반올림'이 떠오른다.

반올림은 삼성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직업병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충분하고 투명한 보상을 요구하며 서울 강남역 삼성 홍보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이미 그 농성이 1년을 넘겼다. 무책임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삼성이야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그 농성을 1년 동안 이끌어 온 반올림과 연대단체들의 끈기와 노력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이제 10월27일이면 삼성의 임시주주총회에서 실질적 상속자인 이재용씨가 등기임원으로 선출된다고 한다. 요즘 삼성은 갤럭시노트7 사태 이후로 잔뜩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반올림과의 대화나 노동인권 내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삼성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은 채 이재용씨를 등기임원으로 선출해 제2의 도약을 노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옛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건만, 자기 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세계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성의 노동인권 현실은 가히 최악이라 할 만하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노조결성을 하지 못하게 하며, 삼성과 삼성 협력사들의 안전은 뒷전이다. 오죽하면 국제노총(ITUC)이 삼성을 “기술은 현대적인데, 노동조건은 중세적인 기업”이라고 평가했겠는가.

가야금은 열두 줄밖에 안된다. 그러나 그 열두 줄로 전 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은 왼손으로 열 두 줄 이상의 반올림음과 반내림음으로 줄과 줄 사이의 풍성하고 오묘한 소리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삼성이 지금이라도 자신이 열두 줄밖에 안 되는 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반올림과 진정으로 대화하고 대책을 마련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사과한다면, 삼성은 풍부한 가야금 소리처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날을 기원하며 오늘도 난 가야금을 연습하러 간다.

정병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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