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오늘은 벗이자 동지였던 김주익의 13주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투쟁과 죽음이 노동운동에서 점점 잊혀 간다. 내 기억도 이미 많은 열사를 잊었다. 그러나 나는 박창수·조수원·김주익·배달호를 결코 잊으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형님아 아우야, 하면서 내 삶과 동반했던 열사들이다. 죽는 순간까지 운동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인간의 생명을 받고 세상에 온 나의 도리다.

현재의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를 바꿀 거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없다. 운동에 몸담은 이들조차 장담하지 않는다. 참 초라하다.

이런 노동운동에도 세상 바꾸겠다는 꿈을 현실에 적용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혁명과 노동해방으로 표상됐다. 노동자계급은 총파업을 전개하며, 인민과 함께 민중항쟁을 일으킨다. 정권과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고 미제를 축출해서 노동자·민중의 권력을 수립한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달아올랐다. 다들 화염병을 들었고 감옥에 앞장섰다. 누구는 목숨도 던졌다.

이제 노동운동은 너나없이 옛 방식의 혁명을 포기했다. 몇몇이 구상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실에선 준비도 실천도 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고립되고 정보기관 촉수에 박살날 뿐이다. 맞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옛 방식의 혁명을 접은 것은 당연하다.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운동의 영혼마저 잠재웠다는 점이다. 내세를 말하는 종교와 달리, 운동의 영혼은 지금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은 지금 여기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려는 계획과 실천이 없다.

옛 방식의 혁명을 접은 노동운동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멈췄다. 탄압 때문이 아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대안, 그것을 인정해야 되는 상황이 싫었다. 개량,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개량 투쟁을 이론으로 세워야 하는 것이 찝찝했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혁명주의는 정통이었다. 개량주의라는 딱지는 모욕이었다. 조합주의라고 욕먹을지언정 개량주의 욕은 참지 못했다. 조합주의는 낮은 차원의 경제운동이고, 개량주의는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치운동인데도 그랬다. 노동운동의 뿌리를 강렬하게 지배한 러시아혁명의 유산이 남긴 웃긴 현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상급식 확장운동, 문재인 지지방침,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 민주노총 강화 등은 현 체제의 개량을 더욱 뒷받침하는 것인데, 그 실천을 하면서도, 개량 투쟁의 전면화라는 실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자. 개량주의라는 덫을 걷어치우자. 상대에게 개량주의 딱지를 붙이는 집단도 실은 개량주의와 조합주의 범주에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노동운동이 하고 있는 것은 고작 상층조직 노동자의 조합주의 집사노릇 아닌가.

지금 여기에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과업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혁명주의든 개량주의든 이념과 노선은 손가락이다. 달은 저 밑바닥 노동대중의 삶이고 인민의 삶이다.

옛 방식의 혁명을 접으면서도 못 버린 옛 방식의 전략·전술 사고방식도 과감히 버리자. 시도 때도 없는 총파업, 위력시위, 광장집회, 정권퇴진 그 어느 것도 밑바닥 노동대중과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조직대중과 운동가들조차도 시큰둥하다. 세상은 코웃음 친다.

최저임금 1만원을 현실화하기 위해 민주노총 조합원 70만명이 2시간이라도 공동행동을 하는 것, 밑바닥 노동대중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조합원의 임금인상분 단 몇%라도 사회적 기금으로 내놓는 것, 그것을 위해 사회적 교섭전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 등의 전략·전술을 세워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잡아야 유럽처럼 총파업도 진짜로 구사할 수 있다. 한때 우리는 유럽 노동운동을 개량주의라며 무시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우리 운동은 유럽 개량주의 노동운동의 발바닥도 못 따라간다.

오늘 글의 결론이다. 80년대의 유산에 묶여 있는 낡은 운동가의 뇌가 인정하건 말건, 현 시대는 객관적으로 개량의 시대다. 하나, 현재의 한국 사회는 밥을 남기는 사회다. 음식을 남긴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옛 방식의 혁명은 어림도 없다. 둘, 노조로 조직된 노동대중은 이 체제에서 착취의 사슬밖에 잃을 게 없는 무산계급이 아니다. 지킬 것이 더 많다. 셋,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도 최하층이 아니다. 골목의 숱한 영세상인보다 처지가 나쁘지 않다. 넷, 자본에겐 지불능력이 있다. 재벌 사내유보금만 700조원이 넘는다. 여차하면 풀 수 있다. 다섯, 미국 총자본은 한반도 전쟁을 통해 얻는 것보다 현 상태에서 얻는 이득이 더 많다. 미국은 중국 동의 없이 북한과 전면전을 할 수 없다. 여섯, 백남기 투쟁이건 철도파업이건 시일이 흐르면 동력이 떨어진다. 운동가들도 지친다. 혁명의 시대엔 갈수록 타오른다. 일곱, 운동가들이 일상의 삶에 묶여 있다. 생계를 포기하지 못하고 감옥에 앞장서지 않는다. 자칭 투철한 사회주의자들도 별수 없다. 길게 보고 운동해야 하는 개량의 시대라서 그렇다.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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