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의 노동조합, 특히 활동성이 강한 민주노총 가맹 노동조합들이 주로 있는 제조업부문에 속한 대기업 노조들에 대해 언제부터인가 ‘귀족노조’라는 호칭이 종종 쓰인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보호해 주고 상대적으로 ‘잘나가는 기업들’에서 고임금을 향유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 그리고 그들이 향유하는 권리의 사회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짙게 배어 있다.

귀족노조론은 대체로 노동조합을 문제적 존재이자 노동시장질서를 해치는 불필요한 권력 카르텔로 보는 시장주의적·보수주의적 시각을 주로 지니는 이들에 의해 형성되고 재생산된다. 그들의 칼끝은 사실 노동조합의 귀족성이라고 하는-귀족성이라는 표현도 의미가 모호하지만-현재의 특수한 상태를 넘어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불온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한 급진적 시장주의자들은 아니어도, 현재와 같이 노동시장에서 노동자 간 연대(solidarity)가 약화돼 있고 기업규모 간 고용형태 간 노동의 사회적 시민권 격차가 심하게 벌어져 있는 문제적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는 양상을 개탄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도 역시 현재 대기업 노조가 취하는 행태가 지니는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던진다. 노동운동이 대의에 걸맞지 않은 사회적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전자가 악의적 비판이라면 후자는 애정 어린 비판이라고 할까. 악의적 비판이든 애정 어린 비판이든 중요한 것은 현재와 같은 노동조합 존재방식에 대해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노동조합과 노조원들의 대응은 아쉽게도 매우 더디고 생각보다 덜 민감하고 근본적이지 않아 보인다.

사회학적으로 조직은 종종 유기체에 비유된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분화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모든 유기체는 외부로부터 자양분과 돌봄을 공급받으며 환경과 조응하기 위한 노력을 스스로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자정을 하고 환경에 조응하기 위한 노력을 멈춘 유기체는 미래에 생존을 보장받지 못한다. 인간의 조직도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전술했듯이 현재 노사관계 제도와 조직의 조건은 노동조합 활동의 밭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다이내믹한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노동조합의 투쟁이 사회구성원 전체 내지 노동하는 이들 모두의 근로 및 생활조건의 증진과 곧바로 일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급진적 시장주의자들이 아니라면, 그리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사회적 가치의 보호와 증진을 같이 추구한다면 노동조합과 같은 제도화된 조직이 사회를 균형 잡히고 바람직하게 이끌어 가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무오류의 집단도, 도덕군자들의 집합체도 아닌 것도 물론 명백하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노조 스스로도 새로운 혁신과 환경과의 조응을 위한 자구책을 모색해 가야 하고, 주변에서도 그러한 노력이 잘 이뤄지도록 배려하고 성원해야 한다. 귀족노조라는 비판은 과도한 악의성 질타의 성격이 강하다.

한국의 자주적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조직으로 결실을 맺은 것은 30년이 채 안 된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막 서른을 앞둔 청년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한국 노동운동의 성장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주체적 조건, 새로운 환경적 조건에 맞는 제도적인 옷을 입히고 또 갈아입혔다.

그러한 노력은 지금도 미래에도 계속돼야 한다. 귀족노조라고 하는 비난에만 몰입하기보다 노조 스스로 현실 문제를 인지하고 극복해 갈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새로운 비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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