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비정규직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하철역에서, 야간 철로에서, 조선소와 제철소에서, 에어컨 실외기가 달린 건물외벽에서, 케이블방송통신 선로들이 빽빽하게 깔린 전신주 위에서 무시로 작업 중에 목숨을 잃는다. 외주하청 구조가 거대한 건조물로 축성된 대한민국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이윤극대화에 혈안이 된 자본의 제단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 명백한 사회적 타살, 구조적 타살이다. 사람의 목숨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다. 최우선으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SK브로드밴드 의정부홈고객센터 소속 인터넷 설치기사가 추락해 다음날 숨졌다. 35세의 창창한 나이에 떨어져 숨진 설치기사의 손에서 감전흔이 발견됐다. 당일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는데도 무리하게 작업하다 벌어진 참사였다.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설치기사의 작업환경과 고용형태가 필연적으로 강제한 인재였다.

추락사한 설치기사는 개인 도급기사였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고용형태로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했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린 사고 당일 오전 조회 자리에서 “일이 많이 밀려 있다. 다 처리하라”는 회사 지시를 받았다. 회사가 업무 지시를 위해 만든 카톡방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남은 기간 실수 없이 마감할 수 있도록 신경 쓰라”거나 “마음 내려놓지 말고 긴장해서 작업 바란다”는 지시를 연달아 받았다. 그전에도 회사로부터 “당일 처리 못한 기사들은 퇴근 전에 미처리 사유에 대해 시시콜콜 답변해 줘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사유는 애초에 자르겠다”는 실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자신을 보호해 줄 노조도 없는 상황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도 군소리 없이 수행할 수 밖에 없었다. 결말은 비극으로 끝났다.

SK브로드밴드 개인도급 설치기사의 죽음은 희생된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청업체의 지시 아래 지역서비스센터를 담당하는 외주하청업체의 갑질과 실적 압박, 도급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노동권 배제 사각지대로 내몰린 수천명의 SK브로드밴드 현장기사들과 수만명의 케이블방송·통신, 가전 등 간접고용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이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오늘 누가 희생될지 모르는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망사고가 노사합의를 파기한 결과라는 점이다. 지난해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는 원하청업체와 외주하청업체 재하도급을 없애기로 노사합의했다. 그런데 외주하청업체들이 개인도급을 늘리는 방식으로 불안정고용을 확대했고, 설치기사의 경우 무려 과반인 52%가 개인도급 형태로 전환됐다. 대놓고 노조를 무시한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핵심은 노조 결성과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립을 통한 고용안정과 차별시정인데, SK브로드밴드 원하청업체는 역주행으로 일관하다 비정규직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이다.

모든 외주하청 안전사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책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근절을 통한 원청업체 직접고용 정규직화다.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혐의가 짙은 나쁜 일자리를 없애고 좋은 일자리로 바꾸는 것이 가장 간명하고 실질적인 대책이다. 진짜 사장이 법적 책임을 지고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온당하다. 정부와 국회가 재벌대기업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민간부문에서도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가 표준모델이 될 수 있도록 원청사업주 사용자성과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등 법·제도 개선에 달려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이 온몸을 바친 투쟁으로 피땀 흘린 만큼 조금씩 개선해 가고 있을 뿐이다.

우선 이유 불문하고 악천후 위험작업은 근절해야 한다. 감전과 추락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악천후 작업을 강제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기사들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하게 되면 무섭다고 한다. 원하청업체의 득달같은 실적압박 시스템 속에서 떠밀려 작업으로 나가게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악전후시 작업 강요는 즉각 중지해야 하고 작업 당사자의 현장작업중지권도 보장해야 한다. 고소작업차 이용과 2인1조 작업 등 안전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SK브로드밴드와 모기업인 SK텔레콤은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비정규직노조가 요구하는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안전과 고용실태 관련 기술서비스 업종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중대재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을 일회용 소모품으로 여기는 자본의 탐욕이 매일 비정규직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사람의 안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고소작업이 이뤄지는 업종 전체가 어디서 어떤 중대재해가 발생할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정말 비정규직은 매일 우연히 살아남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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