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틸알코올 중독사고 추가 피해자(오른쪽에서 세 번째, 네 번째)가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다시는 저희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메틸알코올 중독이 원인이란 것을 모르거나 어디에 알려야 할지 모르는 피해자들은 속히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올해 초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사건(피해자 5명)을 일으킨 삼성전자 협력업체에서 피해자 2명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추가 피해자들이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이들은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이정미 정의당 의원·노동건강연대가 주최했다.

“누구도 메틸알코올 사용 알려 주지 않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는 삼성전자 3차 협력업체인 경기도 부천 소재 덕용ENG에서 지난해 1월 중순부터 3주간 일한 불법파견 노동자 김아무개(29)씨와 역시 삼성전자 3차 협력업체인 인천 소재 BK테크에서 지난해 9월부터 4개월간 일한 불법파견 노동자 정아무개(35)씨다. 두 회사 모두 메틸알코올 중독사고 피해자가 나온 사업장이다.

김씨는 덕용ENG에서 12시간 야간근무를 하다 3주 만인 올해 2월 호흡곤란과 앞이 안 보이는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치료를 받았지만 현재 그의 오른쪽 눈은 완전히 실명된 상태다. 왼쪽 눈은 10% 정도 실루엣을 확인하는 수준이다. 김씨는 "파견회사와 사용회사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올해 1월22일 눈이 침침하고 몸이 안 좋아 감기인 줄 알고 조퇴했다가 집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 역시 실루엣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두 눈이 멀었다. 당시는 메틸알코올 중독사고가 처음으로 사회에 알려진 때였다. 사용회사는 정씨에게 “어차피 산재 인정이 안 된다”며 합의를 압박했다. 정씨는 결국 말도 안 되는 액수에 합의하고 말았다.

불법파견 사용회사 추가 피해자 은폐 시도

두 피해자는 “파견회사를 통해 들어간 협력업체에서 안전교육은커녕 보호장구도 주지 않았다”며 “알코올 냄새가 심해 머리가 아팠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하루 종일 메틸알코올에 노출됐는데도 그것의 정체도 몰랐고 알려 준 사람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직접 마스크를 사다 썼다.

이들은 메틸알코올 중독사고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시민단체에서 추가 피해자 신청을 받는다는 캠페인을 했음에도 그런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김씨는 “지인을 통해 산재신청 여부를 알아보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됐다”며 “추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같이 일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중국인 노동자가 실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정씨 사례는 사용회사가 메틸알코올에 의한 중독사실을 알고도 은폐를 시도한 경우다. BK테크는 올해 초 노동부 조사를 받았지만 메틸알코올 사용 사실과 추가 피해자(정씨)가 있다는 사실을 노동부에 알리지 않았다.

“정부는 메틸알코올 노동자 피해 전수조사 해야”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제조업 파견시스템이 낳은 억울한 중독사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정애 의원은 “메틸알코올 중독사고가 발생한 덕용ENG·YN테크·BK테크 3개 업체가 3개월 단위로 100명씩 파견노동자를 교체해 사용한 만큼 연간 400명이 메틸알코올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노동부가 3개 업체에서 일한 것으로 파악한 노동자는 266명뿐”이라고 지적했다. 추가 피해자 김씨와 정씨 역시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다.

김삼화 의원은 “정부가 파견을 금지하는 제조업에도 파견을 허용한다는데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노동자 건강권 보호제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정부는 메틸알코올 노동자 피해 전수조사와 함께 유해화학물질 사용사업장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근로복지공단은 추가 피해자의 산재신청을 신속히 승인해야 한다”며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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